(시론)자식은 부모를 극복하며 어른이 된다

입력 : 2022-05-26 오전 6:00:00
필자의 부모님은 모두 교사셨다. 학창 시절 주변에서는 선생님의 자제라는 기대가 컸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품행이 바르고 모범적인 학생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창 시절 필자는 모범적인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으로 단순하게 나눈다면, 아닌 쪽에 가까웠다. 성적이 떨어져서, 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떠들다가 선생님께 혼이 나거나 맞은 적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묵묵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하셨고, 언제나 내 판단을 존중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나의 의지로 판단하고 실행할 것들이 많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한참 흘러 자식을 키워보니 뒤늦게나마 이제는 곁에 계시지 않는 부모님의 생각을 짐작해본다. 무엇이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보다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하고, 부모님을 넘어서는 자식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가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자식은 부모를 극복하면서 어른이 된다. 부모가 사회적으로 성취가 큰 사람이라면 자식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필자의 학창 시절 정도의 압박과는 비교되지 않을 것이다. 
 
산업화 세대는 우리 사회와 경제의 기초를 닦은 세대다. 민주화 세대는 산업화 세대가 미처 만들지 못한 민주주의를 이끌어 낸 세대다. 그러면서 산업화 세대와 많은 갈등도 있었다. 이제 그 다음 세대는 무엇을 할까. 
 
산업화 세대와 그 이전 세대는 무엇이든지 1호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리를 만들어도 1호였고, 고속도로도 1호였다. 일하고 만들면 그것이 자신의 업적이고 성과였다. 그래서 산업화 세대의 자부심은 대단했고, “해봤어?”라든지, "안 되면 되게 한다"는 식의 사고를 깊이 갖게 되었다. 
 
민주화 세대는 어떤가. 산업화 세대가 이룬 성과에서 그들은 비어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였다. 산업화 세대가 맨땅에서 나라를 만들었다면 민주화 세대는 독재정권의 폭압에 맞서 민주주의를 건설했다. 두 세대 모두 개척자인 셈이다. 
 
산업화 세대나 민주화 세대나 자신이 이룬 성취는 놀랍고 훈장과 같다. 자신들 기준으로 제대로 이룬 성과가 보이지 않는 요즘의 젊은 세대가 영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해보기나 했느냐”는 식이나 “왜 짱돌을 던지지 않느냐”는 식의 폭력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사실 그들은 그것이 폭력이라는 것도 모른다. 아랫세대에게 윗세대는 언제나 모두 ‘꼰대’다. 
 
부모가 사회에서 1호라는 업적을 만들었다면 자식은 할 일이 없어진다. 부모들은 자신이 대단한 경험을 이루었기 때문에 자부심이 강하다. 웬만해서는 성이 차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식은 세상 물정도 모르는 존재다. 많은 부모가 자식을 ‘품 안의 자식’으로 여기고 통제하려 한다. 그것을 부모의 역할이라고 여긴다. 
 
조국 전 장관의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할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고 옹호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입시 서류를 위조해서라도 자식의 성장 과정을 부모가 만들어주는 시대, 그것을 당연하다거나 혹은 부럽다고 보는 세태가 당황스러웠다.
 
오은영 박사는 "양육의 목표는 아이의 독립"이라고 했다. 자식의 선택까지 포함해서 자식이 해야 할 일을 대리하는 부모, 심지어는 불법을 동원하는 부모, 못 해줘서 미안해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 아이가 자라서 어려움을 겪을 때 스스로 이겨낼 힘을 키워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필자는 5학년인 아들과 2학년 딸을 두고 있다. 아이들이 삶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스스로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힘을 키워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를 넘어서기를 바란다. 그걸 바라보는 게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은 부모의 빈 부분을 채우면서 성장하고, 부모를 극복하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부자가 되거나 권력을 잡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기성세대의 가치관, 기성세대의 문화와 부딪치는 가치와 문화를 만들어갈 때 그 세대는 자신의 것을 가지게 된다. 지금 젊은 세대도 그들만의 가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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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