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난에 발목 잡힌 '수주 1등' K-조선, 근본 대책 요원

4개 업체, 인력 뺏겼다며 한국조선해양 공정위 제소
20만명서 9만명으로...9월 기준 약 9500명 부족 전망
외국인 투입, 숙련도·건조 품질 고려 시 대규모 어려워

입력 : 2022-08-25 오후 5:02:59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세계 수주 1위를 달리는 국내 조선 업계가 쌓이는 일감에도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인력 유출을 둘러싼 법적 공방도 예고된 상황에서 당장 실효성 있는 대책은 요원하다.
 
25일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1월~7월 누계 기준 1113만CGT(204척, 47%)를 발주해 1007만CGT(383척, 42%)를 기록한 중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CGT는 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공정이 어려운 첨단 선박일수록 숫자가 높다.
 
국내 조선 3사(한국조선해양(009540), 대우조선해양(042660), 삼성중공업(010140))은 약 3년치 일감을 확보해 선주에 대한 협상력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3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1도크 점거로 진수가 중단된 지 5주만에 30만톤급 초대형원유운반선이 진수 되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
 
지난 2014년 수주 절벽 이후 고전하던 조선 업계는 지난해부터 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량이 증가해 일감이 대폭 늘었다. 반면 조선업 불황 때 현장을 떠난 인력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깊다.
 
최근 조선사들이 한국조선해양을 상대로 준비하는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는 인력난의 단면을 보여준다.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케이조선·대한조선 등 4개 조선 업체는 핵심 인력을 부당하게 빼앗겼다며 한국조선해양을 공정위에 제소할 예정이다. 이들은 한국조선해양 측이 핵심 인력에게 접근해 통상 이상의 연봉과 보너스 등 조건으로 유인 행위를 했고, 서류 지원 때 가점 부여 등 혜택도 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조선해양 측은 "부당한 유인 행위가 있었거나 경쟁사에서 이직하면 특혜를 준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인력이 줄고 수주 물량이 늘어난 상황에서 경력직 채용이 진행되며 갈등이 깊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조선업 인력은 2014년 약 20만3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줄어 지난해 약 9만2000명으로 절반을 밑돌았다. 올해 9월 기준 약 9500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당장 저임금·고위험 노동에 따른 기능직 인력 부족이 문제다. 한국은행 경남본부는 지난달 펴낸 '최근 조선업 현황 및 경남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조선 업계 구인난 이유로 유사 업종 대비 낮은 급여, 과거 대량 해고 경험에 따른 고용 불안정, 정주 여건 부족 등을 꼽았다.
 
한국은행 경남본부는 "조선 업계의 수익성이 여전히 취약한 가운데 최근 수주 증가, 선가 상승 등에도 헤비테일(계약금 절반을 선박 인도 시점에 받음) 계약 특성상 인건비 인상 여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주 52시간제로 잔업과 특근이 줄어 인력 수요가 늘지만, 노동자 개인 소득이 줄어든 점도 지적했다.
 
이에 따라 조선·항공우주 종사자 평균 임금(4128만원)이 제조·화학업 평균(4086만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어서 기술을 호환할 수 있는 제조업으로의 이직이 늘고 있다. 기업은 장기간 적자가 누적돼 재무 건전성이 취약한 점이 부담이다. 기술력 우위와 높아진 협상력은 시차를 두고 영업이익 확대로 이어질 수 있지만, 임금 인상과 원자재가 상승은 단기적 재무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행 경남본부는 "늘어난 수주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임금 문제 해결, 생산 공정 자동화 등으로 기능직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 여건 악화로 자금 조달 비용 상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조선 업체의 단기적인 재무건전성 악화가 장기적인 악영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도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9일 조선 3사 최고경영자 간담회를 열고, 생산 인력 확충, 설계·엔지니어링 등 전문 인력 양성, 외국 인력 도입 제도 개선 등 계획 수립을 예고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4월 E-7 비자 발급 지침을 개정해 조선 업계 외국인 용접·도장공의 하청 투입을 4400여명 규모로 늘릴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숙련도와 선박 건조 품질 등을 고려할 때 무조건적인 대규모 외국인 투입은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조선사들은 기술 교육 프로그램으로 인력 확충에 나서고 있다. 보통 기술 교육을 받은 뒤 우수 협력사에 취업하고, 원청 기술직 채용 시 우대받는 식이다. 현대중공업(329180)현대미포조선(010620)은 다음 달까지 현대중공업그룹 5기 기술연수생을 모집한다. 훈련 수당 월 100만원에 교육비 전액 무료 혜택 등을 준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기술 교육에 대한 의지와 역량 등을 종합 판단해 기술연수생 선발을 진행하고 있다"며 "지난 4기에도 내부 모집 정원을 고려해 이 기준에 부합하는 인원들을 선발해 현재 성실히 기술 연수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선박 건조 물량 증가에 따라 연수생 모집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인력 확충이 쉽지 않다고 한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인력 확충이) 잘 되고 있다, 안 되고 있다는 기준은 없겠지만, 충족은 못한다"며 "절대적인 수 자체가 과거 호황일 때와 비교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고 답했다.
 
삼성중공업 측도 "(직업기술생 모집을) 재작년부터 꾸준히 하고 있다"며 "인력난이어서 당분간 기술 연수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흐름인 스마트 팩토리 구현이 인력난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당장 실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13년 외골격 강화복(입는 로봇)을 선보였지만, 견딜 수 있는 하중과 비용 측면에서 경제성이 떨어져 개발을 잠정 중단했다. 다만 인공지능(AI)을 통한 생산 장비 효율 증가와 업무 협동 로봇 개발, 고위험 작업 기계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부터 자동화 5개년을 시행하고 있다. 자동화를 위한 협동 로봇, 고능률 지능형 용접 캐리지를 현장에 도입했다. 오는 2026년까지 조립 블록 생산 자동화, 선체 외판 도장과 블록 도장 자동화 등을 추진한다. 입는 로봇 개발은 하지 않고 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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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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