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잃은 전쟁’ 전장연-서울시, 설 이후 대치 격화

휴전·면담 모두 수포로…다시 지하철 운행 지연

입력 : 2023-01-25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어느덧 만 2년을 넘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서울시의 갈등이 설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전장연은 지난 19일까지 가졌던 휴전 상태를 종료하고 20일부터 다시 지하철 운행 지연 시위를 재개했습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지난 20일 지하철 행동 재개를 밝히고 오후 3시55분쯤 삼각지역에서 기어서 승차를 시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4호선 상행선 열차 운행은 일부 지연됐으며, 오후 4시25분쯤 삼각지역을 무정차 통과했습니다.
 
이로써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2일까지 1차 휴전, 지난 4일부터 19일까지의 2차 휴전 모두 단 하나의 성과도 내지 못한 채 갈등의 골만 깊어진 모양새입니다.
 
전장연은 2021년 1월22일부터 정부와 국회에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휠체어 바퀴를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끼우는 방식 등으로 시위를 진행해 왔습니다. 
 
전장연은 대중교통을 포함해 일상생활에서 차별받는 장애인들에 대한 기본권을 지키고 정부와 사회의 홀대를 시정하기 위한 시위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서울역 승강장에서 열린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22주기 지하철 행동'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계속된 지하철 시위, 성과없었던 '휴전'
 
하지만, 이른바 ‘나쁜 시위’가 2차 휴전 이전까지 모두 82회나 계속되면서 열차 운행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시민들의 출퇴근을 비롯한 일상생활까지 침해해 왔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연말 SNS를 통해 전장연에 휴전을 제안했습니다. 국회 예산안 처리가 이뤄질 때까지 시위를 멈춰 달라는 내용입니다.
 
전장연이 이를 받아들여 1차 휴전이 이뤄졌지만 결과적으로 국회에서 전장연이 요구한 예산 중 0.8%인 106억원만이 반영됐습니다. 전장연은 새해부터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서울시도 무정차 통과로 맞섰습니다.
 
1차 휴전의 화두가 예산이었다면, 2차 휴전의 화두는 면담이었습니다. 전장연은 19일까지 오 시장에게 면담을 제안했고, 오 시장도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면담이 금세라도 이뤄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양 측은 면담방식을 두고 공개냐 비공개냐, 단독이냐 합동이냐 등을 두고 이견을 보이다 결국 최종 결렬됐습니다. 그렇게 두 차례의 휴전은 서로를 향해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휴전이 끝나고 남은 것은 날선 감정과 법정 다툼입니다. 2차 휴전이 이뤄진 기간 서울교통공사는 기존 소송에 더해 지하철 불법 시위에 대한 6억원대의 손해배상소송을 추가로 제기했습니다. 서울시와 전장연 사이에선 면담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단어들이 오갔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9일 전장연을 제외한 9개 장애인 단체 대표들과 신년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서울시)
 
서울시 "원칙적 대응" 장기화될 경우 시민 피해 누적
 
서울시는 무관용 원칙적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하철 운행 지연으로 그동안 입은 피해가 막대한 상황에서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동률 서울시 대변인은 “전장연이 시민의 불편과 불안을 초래하는 운행방해 시위를 계속한다면 더 이상 관용은 없다”며 “서울시는 시민의 안전하고 편안한 출근권을 지켜내기 위해 앞으로 있을 불법행위에 모든 법적·행정적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장연도 전장연대로 상처만 남았습니다. 예산 확보도 시장 면담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막대한 액수를 배상해야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전장연은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집회결사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탄압했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낸 상태입니다.
 
전장연은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면서까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대한 목소리를 외쳤던 이유는 지난 수십년 간 장애인의 권리는 비용의 논리로 늘 후순위로 밀려왔기 때문”이라며 “오 시장에게 폭력적인 방식과 민형사상 소송으로 문제를 풀기보다 대한민국 사회가 장애인에게 시민권조차 보장하지 않았던 반성으로부터 풀어가기를 끝까지 기대하는 마음”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시종일관 뒷짐만 지고 있고, 서울시는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가운데 장기전으로 접어들수록 시민들의 피해만 누적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년간의 시위로 인한 사회적 피해만 4450억원에 달합니다.
 
이미 승객 1210만명이 피해를 봤고 그 숫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차례의 휴전이 끝나고 전장연도, 서울시도 웃지 못했지만, 가장 웃지 못하는 건 시민들입니다.
 
지난해 10월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전장연의 장애인권리예산 등을 촉구하는 '제41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로 시민들이 출근길에 불편을 겪고 있다.(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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