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 재네들은 '골디락스'…우린 '민스키'

입력 : 2024-02-02 오전 6:00:00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익숙한 콩쥐팥쥐·흥부놀부처럼 전래동화는 선한 인물을 통해 권선징악이나 효를 투영합니다. 마더구스·너서리라임으로 불리는 영미권도 문화적 차이 뿐 삶의 교훈을 담아낸 가르침은 매한가지입니다. 
 
때때로 전래동화 주인공들은 동심을 자극하는 모험과 용기, 도덕적 감각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실용주의적 사물의 정당한 조리나 지혜가 묻어나는 재치를 주곤 하죠.
 
특히 19세기 영국 동화로 전해져오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Goldilocks and the Three Bears)' 이야기는 단순한 문화론적 관점이 아닌 세계 대호황기 일컫는 경제 용어로도 쓰입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을 의미하는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 현재 골디락스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곳은 바로 미국입니다.
 
뉴욕 월가의 기대감 때문인지 '미국 경제가 골디락스 구간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경기 연착륙까지 예견하고 있습니다.
 
물론 'GDP는 너무 뜨겁고 인플레이션은 너무 차갑다'며 경계의 목소리도 있지만 서프라이즈 호평은 잘될 가능성의 성장 엔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요. 내수 약세가 더욱 짙어지다보니 수출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수출목표 달성 위한 '원팀'을 강조하는 등 정부가 역대 최대인 '수출 7000억 달러' 목표를 꺼내든 배경을 역설하면 빚내서 집을 사고 건설 자본의 먹여 살리던 '부채공화국'의 구조적 폐해와 무관치 않습니다.
 
의식 있는 경제 석학들이 지속 가능성을 향한 변화를 조언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 구조 실상은 지속 가능성이 불가능한 터널로 빨려가는 우려를 떨칠 수 없습니다.
 
정부가 경제방향타로 민생을 논하면서 카드 더 쓰면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정책이 '부채공화국'의 구조적 단면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쓸 여력이 없다고 하소연하는데도 말이죠.
 
재벌 금융자본 쪽의 가계대출로 내몰기 위해서는 부동산 자산은 매력 덩어리 시장입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과 고금리 충격파는 빚내서 집산 이들에게 가계 폭탄으로 다가왔고 자산 거품까지 내수 취약성이 고착화됐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교훈은 잊은 채 부채감축 과정 없이 빚내서 집 사고 빚내서 빚 막는 ‘악순환’ 고리로 가계부채는 임계점의 냉벽 앞에 놓였습니다.
 
임계점 현실을 알고도 금리의 끝을 잡고 가계의 소비 여력을 높여야하니 그야말로 살얼음판이 따로 없습니다.
 
소비가 움츠려들면서 기업들은 물건을 팔지 못하고 경쟁력이라는 이름하에 단행하는 조직개편, 구조조정은 인건비 감축 등 가계소득의 직격탄으로 비극을 초래하죠.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노동자, 자영업자 등 소득 간 격차 심화 과정이 이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저출산 국가일까요. 높은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급증, 자산불평등 구조는 출산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신생아특례론 등 또 빚내라고 하는 걸 보면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네요.
 
호황기와 달리 고금리 속 부채 급증은 결국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양산하고 건설 자본과 금융 자본 시장에도 공포를 불러옵니다. 
 
우린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경제 위기를 통해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필립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을 답습했습니다.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 부채가 임계점을 지나 자산 가치, 금융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경우 걷잡을 수 없는 경제 위기의 병폐를 더 악화시킬 것이 자명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수 폭락에 따른 위협 요인을 버틸 또 하나의 축인 수출 목표가 절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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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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