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맥주의 예견된 몰락

수제맥주 상장 1호 제주맥주, 경영권 매각
세븐브로이맥주, 지난해 적자전환
주류 트렌드 급변·콜라보 마케팅 피로도 누적 등 여파

입력 : 2024-03-22 오후 3:10:12
 
[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수제맥주 시장이 최근 거듭된 악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홉의 쓴맛이 짙게 배어나오는 풍미가 일품인 수제맥주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직후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열풍을 선도하며 높은 인기를 구가한 바 있는데요. 하지만 이후 젊은 수요층을 중심으로 하이볼이 급부상하는 등 주류 트렌드가 급변했고, 콜라보레이션(콜라보) 마케팅에 의존한 방식도 한계에 다다르면서 업체들의 실적 저하가 뚜렷해진 모습입니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제주맥주는 최대주주인 엠비에이치홀딩스(14.62%) 및 문혁기 대표이사(0.17%)가 주식 864만3480주를 주당 1175원에 자동차 수리 및 부품 유통 업체인 더블에이치엠에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오는 4월 15일 중도금 지급 시 최대주주가 바뀌고, 5월 8일 개최 예정인 임시 주주총회에서 더블에이치엠이 지정한 이사 및 감사가 선임되면 경영권은 완전히 이전됩니다.
 
지난 2015년 설립된 제주맥주는 2021년 5월 '테슬라 요건(이익 미실현 기업 상장 특례)'을 통해 국내 수제맥주 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22년 매출이 240억원으로 전년 대비 16.9% 감소하고 116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는데요. 또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170억원으로 1년 새 11.8% 줄고, 영업손실은 94억원으로 기록되는 등 실적이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역시 국내 주요 수제맥주 업체인 세븐브로이맥주도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세븐브로이맥주의 매출액은 84억9000만원으로 전년(302억8000만원)보다 약 72% 감소했습니다. 또 지난해 영업손실은 24억7000만원으로 75억원의 영업익을 거뒀던 전년 대비 적자 전환했는데요.
 
이처럼 수제맥주 시장의 급격한 위축은 주류 트렌드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외부 활동에 제약이 컸던 코로나19 시기에는 홈술 문화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장인 정신을 강조한 수제맥주 신규 라인업들이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여기에 당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여파로 일본산 수제맥주 인기가 급격히 꺾인 점도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하이볼 문화가 확산하고 엔데믹에 따른 외부 활동이 풀린데 따른 회식 증가로 기존 대기업 맥주들의 인기도 회복되면서, 상대적으로 수제맥주의 입지가 급격히 좁아지기 시작했는데요.
 
여기에 수제맥주 본연의 콘텐츠 강화보다는 콜라보 마케팅에 의존한 점도 문제였다는 지적입니다. 업계는 편의점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며 '곰표 밀맥주', '말표 흑맥주', '골뱅이 맥주', '비어리카노' 등 다양한 제품들을 쏟아냈는데요.
 
이들 제품의 인기는 MZ(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지만, 오히려 수제맥주의 이미지가 가벼워지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한 주류 업계 관계자는 "크래프트 맥주 자체가 개인 및 소규모 양조장이 자체 생산한 정통성 있는 맥주라는 점이 중요하다. 적어도 제품이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범주를 벗어나면 안 된다"며 "업계가 수제맥주의 콘텐츠 가치를 높이거나 차별화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 경쟁력을 살리는 길인데, 대규모 유통 채널을 통한 대량 생산에 치중한 것이 최근 실적 저하의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습니다.
 
이어 "과도한 콜라보 마케팅도 수제맥주 업계에 독으로 작용했다"며 "소비자들에게 수제맥주가 너무 가볍고 트렌디하다는 선입견이 생겼는데, 이는 추후 수제맥주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수제맥주들이 진열돼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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