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넘쳐나는 옷, 환경 재앙 낳는다

우리나라 세계 5번째 중고 의류 수출국

입력 : 2025-04-15 오전 8:55:58
의류 폐기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체코 프라하 시청 광장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옷. (사진=Freepik)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폐의류는 총 10만6536톤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저개발국에 중고 의류로 수출되며, 국내에서 판매되는 비율은 약 5% 정도에 불과합니다. 
 
세계 많은 나라와 기업, 제품들의 상세한 글로벌 무역 데이터를 제공하는 경제복잡성관측소(Observatory of Economic Complexity)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영국, 독일 다음으로 중고 의류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로 나와 있습니다. 인구를 감안하면 가장 많은 옷을 버리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어가 쓰인 옷을 입은 저개발국가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저개발 지역으로 수출되는 중고 의류들은 상당 부분 현지에서도 소비되지 않고 쓰레기로 처리됩니다. 
 
예를 들어, 가나 수도 아크라의 칸타만토 시장에는 매주 ‘죽은 백인의 옷’이라고 불리는 1500만벌의 중고 의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가나 인구는 약 3400만명, 매주 인구의 거의 절반을 입힐 수 있는 의류가 들어오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류들이 모두 소비자에게 팔리는 것은 아니며, 약 40%는 폐기물로 버려져 강, 바다, 토양을 오염시키거나 소각되어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낡거나 떨어져 입을 수 없는 옷을 버리는 경우는 드뭅니다. ‘패스트 패션’ 업체로 불리는 자체 상표 의류 전문 매장(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SPA)은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옷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며, 내구성이 낮은 옷을 철마다 새롭게 출시합니다. 그리고 그런 옷들은 일회용품처럼 쉽게 버려집니다. 
 
일회용품처럼 소비되는 패스트 패션
 
많은 의류 업체들이 ‘리사이클링’이나 ‘업사이클링’을 홍보하지만, 실제로 전체 생산량에서 이런 옷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습니다. 또한 전체 생산량조차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옷이 과잉 생산되고 있다는 것은 팔리지 않고 재고 상태에서 버려지는 엄청난 규모의 옷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017년에 발표된 엘렌 맥아더 재단(Ellen MacArthur Foundation)의 자료에 따르면 의류가 팔리지 않거나 재활용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매년 500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산-소비-폐기의 일방적 구조는 환경적, 사회적으로 수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합니다. 예를 들어, 섬유 생산으로 인해 매년 12억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며, 이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10%에 해당합니다. 또한, 섬유 생산 과정에서 유해 화학물질이 노동자와 소비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며, 생태계를 파괴합니다. 일부 옷들은 세탁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배출하는데, 이는 매년 약 50만톤에 달하며 대부분 하천이나 바다로 흘러듭니다. 화장품 속 미세플라스틱 알갱이의 16배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과잉 생산되어 버려지는 의류의 부정적인 영향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으며 미래에는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의류 재활용 쉽지 않아
 
대부분의 의류는 다양한 직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분류가 어려운데, 특히 천연 섬유와 합성 섬유가 혼합된 옷을 분리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최근 섬유 재활용 기술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근적외선 분광법(Near-Infrared Spectroscopy)입니다. 적외선에 가까운 빛을 직물에 조사하여 물질 내부의 수소 결합 분자의 진동을 감지하고 화학 성분이나 구조 정보를 비침습적으로 알아내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재활용센터에서 섬유를 더 빠르게 분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정전기를 이용한 섬유 분리 방법입니다. 과학자들은 정전기를 이용해 천연 섬유와 합성 섬유를 분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지만,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 섬유를 분쇄해야 하므로 분리한다고 해도 재활용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세 번째는 화학적 재활용입니다. 이는 버려진 의류를 화학 처리하여 새로운 섬유 원료를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경제적 비용과 환경적 비용이 적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생물학적 재활용이 있습니다. 이는 미생물이나 효소를 이용해 섬유를 분해하고 새로운 원료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가장 이상적이지만, 아직 실험실 수준의 연구에 머물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옷을 덜 생산하고 덜 버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자들이 패스트 패션을 지양하고, 디자인 단계부터 내구성과 재활용을 고려한 에코디자인을 채택하여 적정 규모로 생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리를 우선하는 생산자에게 자발적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실효성에 장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제조업체나 수입업체가 제품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환경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제도를 도입해 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자원순환을 촉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비자들에게는 유행에 민감하게 옷을 입고 버리기보다는 필요한 옷을 신중히 선택해 오래 입는 실용성과 품질 중심의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소비가 요구됩니다. 아버지 입던 옷을 형이 줄여 입고, 형이 입던 옷을 동생이 물려받던 과거 어려웠던 시절의 소비 습관이 기후변화 시대의 새로운 미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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