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주 4일제, 워라밸인가 워라헬인가

입력 : 2025-04-18 오전 6:00:00
대선을 앞두고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제로의 전환을 추진한다고 한다. 앞서 주 5일제를 시행할 때도 강한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엔 안착했다. 그렇다면 주 4일제도 가능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냉정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을 유지하며 ‘많이 일해서 성장한’ 나라다. 그래서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을 여전히 밑돈다. 수출 중심 국가인 한국의 산업 구조상 낮은 가동률이나 비효율적 노동 운영은 곧 국제 경쟁력 저하를 의미한다. 
 
선진국에서 주 4일제 또는 유사한 형태의 근무 체제를 도입할 수 있었던 건 충분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생산성과 자동화 기술, 유연한 노동 시장 구조가 뒷받침됐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그러한 기초 체력이 부족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지는 근무 일수 단축은 산업 간 격차를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이미 유연근무제, 재택근무, 시차출퇴근제 등 다양한 근무 형태를 실험 중이다. 그러나 전체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사정이 다르다. 직원 한 명의 이탈조차 큰 손실로 이어지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무 일수 단축은 곧바로 매출 하락이나 업무 공백으로 연결된다. 
 
근무 형태와 산업군별 차이에서 비롯되는 불균형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서비스업과 제조업이 전체 산업군의 90%를 차지한다. 그런데 병원, 택배, 대중교통, 돌봄노동, 요식업 등 필수 서비스 산업에서는 주 4일제의 적용이 사실상 어렵다. 이들은 하루 반나절의 인력 공백조차 감당할 수 없는 구조다. 주 4일제가 도입되면 오히려 기존 종사자에게 더 많은 근무를 요구하거나, 추가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기업 부담만 아니라 소비자 가격도 당연히 인상된다. 제조업에서 근무 일수 단축이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도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결국 주 4일제는 어떤 직업군에선 근무 시간이 줄고, 어떤 직업군에선 되레 노동강도가 가중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게 뻔하다. 사회 전체의 평등한 삶의 질 향상을 담보하지 못한 채 일부 계층만을 위한 제도로 전락할 위험이 크단 얘기다. ‘누구는 쉬고, 누구는 더 일하는’ 제도는 진정한 의미의 워라밸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더욱 커졌고, 기술 중심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낮출 수 있는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하는 건 자살행위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단, 산업별, 규모별, 업종별로 탄력적인 도입이 가능하도록 구체적 설계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임금이 감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주 4일제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 구조를 위한 수단이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의중 금융부 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김의중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