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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토마토 최윤석 기자]
MBK파트너스와 영풍(000670) 연합이 고려아연(010130)의 경영권 장악을 시도하는 가운데, '집중투표제'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보유 주식 수에 따라 이사 선임 의결권을 배분, 소액주주도 이사 선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다. 제도가 도입될 경우 영풍·MBK 연합(지분 46.69%)은 절반에 가까운 지분에도 이사회 장악에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고려아연 지지가 맞물리면서 MBK의 경영권 확보 싸움은 장기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정치·금융권 '화두'
24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새 정부에 바라는 자본시장 7대 제언’ 발표를 통해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를 강하게 촉구했다.
이남우 포럼 회장은 이날 "기업이 지배주주가 원하는 대로 사세를 키우다 보니 소비와 투자가 동시에 부진한 악순환의 길을 걷고 있다“라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회사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자본시장 활성화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서도 집중투표제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유력한 대권주자 중 한 명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 중 하나로 집중투자제 도입을 거론했다.
지난 21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이 후보는 “이번에 상법 개정에 실패했는데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다시 하겠다”라며 “이사 충실의무 확대뿐만 아니라 집중투표제 활성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도 상법 개정안에 담아 재추진하겠다”라고 발언했다.
집중투표제, 소액주주 힘 실어주는 게임체인저
집중투표제는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출할 때 주주가 소유한 주식수에 따라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받아 투표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안건은 1개씩 상정되고 주당 1표씩 주어져 선임 여부가 결정된다. 이 경우 최대주주의 표가 투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반면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이사 선임 안건은 일괄로 상정돼 1주당 선임 예정 후보자 수만큼 표가 주어진다. 주주는 보유주식만큼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표가 부여되며 경우에 따라 원하는 후보에 몰표를 행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선출할 경우 주식 1주당 3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주주는 3표를 한 후보에게 몰아줄 수도 있다. 이사 후보는 득표순으로 선임돼 소액주주도 일정 지분만 확보하면 이사회 진입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선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 1998년 상법 개정을 통해 집중투표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대다수의 회사가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면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정관에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있어도 ‘무력화’ 가능
고려아연 역시 현재 정관에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며, 집중투표제는 적용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MBK·영풍 연합은 지난해 12월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도입 제안에 법적 대응으로 맞섰다. 당시 유미개발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안건에 대해 영풍·MBK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며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 영풍·MBK 연합이 확보한 지분은 46.69%다. 반면 최윤범 회장 측 지분은 38%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고려아연은 이사회 이사 수를 19명으로 상한이 설정됐다. 그리고 현재 영풍·MBK 연합의 이사수는 4명, 나머지는 고려아연 측 이사로 구성됐다.
영풍·MBK 연합이 추천한 이사를 모두 선임하기 위해서는 46.69%에 주워진 투표권을 분배해야 한다. 하지만 고려아연의 경우 보유지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추천 이사에 몰표를 줘 이사회 장악을 막을 수 있다.
영풍·MBK 연합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장악 실패 이후 장기전을 구상했다. 이번 주주총회에선 영풍 소유 지분 의결권 행사엔 실패했지만 차후 이사회 장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집중투표제의 의무화 가능성에 MBK파트너스의 이사회 장악은 난관을 맞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된다면 MBK가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라며 “이에 경영권 확보까지 투입되는 비용문제와 시간 소요 등으로 결과적으로 이번 딜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측에 설 경우 이사회 장악은 아예 물 건너갈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앞서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고려아연이 제안한 '이사 수 상한 안건'에 찬성표를 던진 것에 이어 영풍·MBK 연합이 제안한 후보들에 대부분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고려아연의 지분 4.51%를 보유 중이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에 "앞서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줬다"라며 "MBK측 지분이 아직 과반이 안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고려아연 지원, 집중투표제 의무화까지 이어지면 이사회 장악 가능성은 없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