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김태은 기자] 한국과 미국 간 관세 협상이 첫 물꼬를 텄습니다. 일단 한·미 고위급 첫 통상 협의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습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방위비 분담금 등 안보 관련 의제는 거론하지 않았을뿐더러, 미·일 협상에서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등판'도 없었습니다. 여기에 한국은 무역균형 추구 의지와 조선 중심의 전략적 한·미 산업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긍정적인 반응도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한·미 양국은 90일 상호관세 유예조치 종료 기간인 7월8일 이전까지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 폐지를 위한 '7월 패키지' 협의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최종 협상 시점을 두고선 한·미 간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됩니다. 6월 조기 대선을 치를 한국은 차기 정부 출범 후인 7월 합의에 무게를 싣는 기류인 반면, 미국은 조속한 성과 도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방위비 분담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등의 논의는 언급되지 않아 불씨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시간은 벌었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해 향후 한·미 간 협의 과정에서 의견차가 두드러질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한·미 협상 '키' 된 조선…미 "최선의 제안 가져와"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 협의'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이 부과한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고 한국은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양국 모두에 이득이 되는 상호 호혜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해 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통상 협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 측은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가 종료되는 7월8일 이전까지 관세 폐지를 목적으로 한 '7월 패키지'를 마련할 것과 양측의 관심사인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해 나간다는 데 (양측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서두르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질서 있는 협의를 위한 양국 간 인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데 (이번 협의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최 부총리는 또 "한국의 정치 일정과 통상 관련 법령, 국회와의 협력 필요성 등 앞으로 협의에 있어 다양한 고려사항이 있음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미국 측의 이해를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미 간 관세 폐지와 산업협력 방안을 담은 '7월 패키지' 합의는 6·3 대선 이후 출범할 새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간 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번 협의에선 조선 협력 방안에 대해 미국 측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설명입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저희가 판단하기에 이번에 설명한 내용 중 조선산업 협력 비전에 대해 (미국 측이) 공감대를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며 "기술협력 부분에 대해 설명한 부분들이 미국 행정부에서 목말라하는 조선산업 역량 강화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안 장관은 조선업 관련 한국 기업의 대규모 미국 투자, 양국 간 인력 등 역량 공동 양성, 기술협력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고 말했습니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미·노르웨이 정상회담에 "오늘 우리는 한국과 매우 성공적인 양자 회의를 가졌다"면서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이르면 다음 주부터 기술적인 조건들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며, 다음 주 중 '이해에 기반한 합의'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들은 자기들의 '최선의 제안'(A game)을 가져왔고, 우리는 이를 이행하는지 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 장관, 최 부총리,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사진=기재부)
'방위비·한미 FTA' 언급 전무…한·미 협상 '중간 점검' 주목
특히 관심을 모았던 한국의 방위비 분담 문제, 한·미 FTA 재협상 등의 관련 논의는 없었습니다. 최 부총리는 '미국 측의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요구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무역 적자 해소와 방위비 분담금을 별건으로 가져가는 한국의 전략은 일단 적중했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민감한 안건들이 뒤로 밀렸을 뿐, 여전히 화약고는 남아있습니다. 당장 다음 주 워싱턴 D.C. 국방부 청사에서 열리는 '한·미 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 등에서 미국이 협상의 지렛대로 관련 문제들을 불쑥 꺼내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그 어떤 협상에서도 군대 문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등과의 협상에서 방위비와 관세를 별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여기에 한국은 '차분한 논의'를, 미국은 '빠른 진전'을 강조하면서 논의 속도를 놓고 한미 간 온도차도 엿보입니다. 한·미 간 협의 방향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다음주 방미를 통해 미국무역대표부(USTR) 간 실무 협의를 갖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차 이뤄질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5월 15~16일 방한 때 '중간 점검'을 거쳐 보다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실질적 내용 면에선 성과는 없지만, 권한대행 체제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다행인 것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분리해서 논의하겠다고 한 건데, 어차피 권한도 없는 대표단에게 얘기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미국 측도 알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늘렸다는 것은 확실한 거고, 단지 미뤄둔 것"이라며 "관세 협상을 통해서 원하는 수준의 기대치를 못 얻으면 또 압박 수단으로 들이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를 시작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