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부터 '윤석열씨의 그림자'가 아른거리고 있습니다.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를 받는 윤씨가 12일 법원에 출석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공개된 것인데요.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한 데 이어 재판장까지 걸어가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윤씨의 등장이 국민의힘의 대권 가도에 악재로 작용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출당·제명 등 윤씨와의 절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김문수 후보는 윤씨와의 관계를 확실히 끊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윤씨의 전면 등판은 당내 분열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씨가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세 번째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대선 전 2차례 더 재판 출석
윤씨는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처음으로 공개 출석했습니다. 그는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곧바로 법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윤씨는 기자들로부터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있는지' 등 여러 질문을 받았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급히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전 재판을 마치고 법원을 빠져나올 때도 기자들이 질문했지만 역시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후에 재판에 재개됐을 때도 별다른 언급이 없었습니다.
앞서 윤씨는 전날 페이스북에서 6·3 대선과 관련해 김문수 후보 중심의 진영 결집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낸 바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서로 믿고 단결한다면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출마 선언 당시 밝혔던 '자유민주주의와 국가의 번영을 위한 사명'은 이제 김문수 후보와 함께 이어가야 할 사명이 됐다"며 당내 단결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따라 윤씨가 이날에도 지지자들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를 낼 것으로 예상됐지만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 윤씨가 등장하면서 '윤석열 대 이재명'으로 대권 구도 양상으로 전환됐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한편으로는 비상계엄 사태의 책임자인 윤씨의 등판으로 '계엄 대 반계엄' 구도가 선명해졌다는 평가도 나오는데요. 윤씨가 대선 전까지 오는 19일과 26일 두 차례 더 재판에 출석하는 만큼, 대선에 막판에 윤씨의 존재감이 국민들에게 부각될수록 이러한 구도는 더욱 뚜렷해질 전망입니다.
윤 등판에 국힘 내 갈등 '최고조'
무엇보다 윤씨의 등장은 국민의힘 내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모양새입니다. 윤씨의 출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인데요. 특히 친한(친한동훈)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메시지가 강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윤씨의 출당·제명 조치를 위해 김문수 후보에게 직접적인 압박의 메시지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 후보와 대선 후보 자리를 두고 결선에서 경쟁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김 후보를 향해 계엄과 탄핵 문제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윤씨의 출당 조치 등을 거듭 촉구했습니다.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했던 안철수 의원은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사과를 비롯해 윤씨와의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다만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약간의 변화 움직임은 보입니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윤씨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젊은 보수 정치인으로서 뼈아프게 생각하고 반성한다"며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여기에 채상병 수사 외압 사건에 대해서도 사과 메시지를 내면서 윤씨와의 관계를 끊는 데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하러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출당 요구에 말 아끼는 '김문수'
그러나 김문수 후보는 당내 인사들의 출당 요구에 대해 여전히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이날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천안함 묘역 참배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김용태 위원장의 입장에 대해 "앞으로 잘 검토하고 논의해서 입장을 발표하겠다"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다만 김 후보 측 주변 인사들은 윤씨의 출당 조치에 대해 분명히 선을 긋고 있습니다. 김문수 캠프에서 시민사회총괄단장을 맡았던 김행 전 비대위원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당내 출당 조치 요구에 대해 "대통령 스스로 판단하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조용술 선대위 대변인도 <JTBC> 유튜브 채널 '장르만 여의도'에서 "(윤석열씨) 출당은 현재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습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일해 계엄의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김 후보는 장관 시절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권의 불법계엄 사과 요구를 국무위원들 중 유일하게 거부했고, 지난 3일 수락 연설에서도 계엄과 탄핵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김 후보가 계엄 사태에 대한 사과·반성 없이 윤씨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선 행보에 나선다면 내란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민심이 모일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