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지난해 12월3일을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2024년 12월3일 23시부터 2024년 12월4일 4시30분까지, 약 330분간의 비상계엄 사태는 미국 한인들에게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미 동부 시간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30분은 모두가 '깨어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재외국민 투표소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무겁고 장엄했습니다. 이번 재외선거는 단순한 유권자 참여를 넘어서는 것으로 12·3 내란 사태 이후 '계엄 심판론'에 대한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한국인으로 더 당당하게 어깨 펴고 살 수 있기를"
제21대 대통령 선거 재외국민 투표 마지막 날인 25일(현지시간) 뉴욕·뉴저지의 투표소인 뉴욕총영사관에는 오전부터 가족 단위의 유권자들이 찾았습니다. 지난 20일부터 뉴욕·뉴저지 투표소는 뉴욕총영사관과 추가 3곳에서 이뤄졌는데요. 마지막 날은 뉴욕총영사관에서만 투표가 가능했습니다. 이날 가족들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이현주(55세·여)씨는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고, 한국인으로 더 당당하게 어깨 펴고 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고 말했습니다.
초·중생 자녀와 부부가 동반해 투표소를 찾은 박상철(47세·남)씨는 "아이들에게 소중한 한 표 행사를 꼭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주재원으로 나와 있는 박씨는 "내년 한국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정상적인 나라에서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중2 때 미국에 유학을 와 30년째 영주권자로 살고 있는 우모(45세·여)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한다"며 "1년에 1~2번씩은 가족들을 만나러 한국에 다녀오는데 이번만큼은 나라 망신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지역 한인은 물론 한국 기업에 다니는 주재원, 유학생, 잠시 여행길에 캐리어를 끌고 온 한인 유권자도 다수 눈에 띄었습니다. 해외 한인들은 이번 대선의 투표 열기가 특히 높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한인들이 투표장을 찾아 한 표를 행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뭉클하다고 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들부터 출장길에 꼭 투표하고 싶어 새벽 5시에 나왔다는 직장인까지 모두 "상식을 벗어나는 나라를 구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재외선거 마지막 날인 25일(현지시간) 뉴욕총영사관에서 유권자들이 21대 대선 투표를 하고있다. (사진=김하늬 통신원)
재외선거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재외투표는 사전투표보다 먼저 이뤄지는 투표로, 재외국민 가운데 18세 이상으로 기간에 해외 출장 중이거나 해외에 거주 중인 경우, 우리나라 국적과 외국의 영주권을 동시에 가진 경우에 선거권을 갖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 재외투표 유권자 수는 총 25만8254명으로, 지난 20대 대선 때보다 14.2% 늘었습니다.
대륙별로는 아시아 지역이 12만8932명(49.9%)으로 가장 많고, 이어 미주 7만5607명(29.3%), 유럽 4만3906명(17.0%) 등의 순입니다. 투표소는 118개국 223개(공관 182개소와 추가 투표소 41개)인데요. 20일 뉴질랜드 대사관·오클랜드 본관·피지 대사관 투표소에서 시작된 재외투표는 25일(한국시간 26일 정오)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재외투표소에서 종료됩니다. 선관위는 25일 기준 5일차 누적 투표자 수가 17만5000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재외국민 투표와 참여율은 저조한 편입니다. 선관위가 추정하는 재외선거권자 수는 197만4375명입니다. 이 중 선거인수가 25만254명, 실제 투표율을 감안하면 해외 거주자의 10% 정도만이 선거에 참여하는 건데요. 하지만 지난 20대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 간의 차이가 24만7077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외국민의 '표심' 또한 중요합니다.
미국 동부 뉴욕·뉴저지 관할 뉴욕총영사관 투표소. (사진=김하늬 통신원)
미국의 경우 재외국민 투표는 주미대사관이 있는 워싱턴 D.C.를 비롯해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시카고, 애틀랜타, 호놀룰루, 휴스턴, 필라델피아, 댈러스 등 총 37개 투표소에서 25일까지 엿새간 진행됐습니다. 미국 내 등록 유권자 수는 5만1885명으로, 지난 20대 대선 당시 등록 유권자(5만3073명)와 비교하면 소폭 줄었습니다. 해외 국가 중에서는 일본(3만8600명), 중국(2만5154명)을 제치고 가장 많은 수입니다.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유권자가 있는 LA에서는 이번에 1만341명이 등록했습니다. 뉴욕총영사관 관할 지역 전체 등록 유권자는 8505명입니다. 이날 투표가 끝난 뉴욕 투표자 수는 6055명으로 투표율은 71.2%로 집계됐습니다.
하와이 호놀룰루를 끝으로 재외국민 투표가 종료되면 투표용지를 모은 뒤 밀봉된 외교행낭을 통해 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이송합니다. 이후 국회 교섭단체 구성 정당이 추천한 참관인이 입회한 가운데 개봉하는데요. 이후 등기우편으로 관할 구·시·군선관위에 보내, 오는 6월3일 한국 대선 투표가 끝나는 대로 함께 개표합니다. 또한 26일부터 29일까진 원양어선 등 선박 454척에 승선한 유권자 3051명을 대상으로 한 선상 투표도 시작됩니다.
한편 선관위는 제21대 대선 재외투표에서 재외선거 투표율이 79.5%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습니다. 명부에 등재된 25만8254명 중 20만5628명이 이번 대선에서 투표했습니다. 지난 18대 대선 투표율은 71.1%, 19대 대선 투표율은 75.3%, 20대 대선 71.6% 였습니다. 미국의 경우 5만1885명 선거인 수 중 3만8620명이 투표해 74.4%의 투표율을 보였습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