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중동 전쟁이 글로벌 통화정책 판을 흔들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 대신 인플레이션 재확산이라는 새로운 변수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는 전쟁 이후 중앙은행들이 경제 전망을 처음으로 공식 평가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FOMC 기준금리 '동결' 무게…연준의 메시지 촉각
15일(현지시간) 외신들을 종합하면 이번 주는 이른바 '중앙은행 슈퍼 위크'로 불립니다. 미 연준을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 주요 통화권 8곳이 오는 18~19일을 전후해 잇따라 통화정책 결정을 내릴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시장의 시선은 미 연준의 3월 FOMC에 쏠려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기준금리가 현행 수준에서 동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18일 열리는 FOMC에서 금리가 동결될 확률은 99.2%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다만 시장의 관심은 금리 결정 자체보다 중동 전쟁이 향후 경제와 물가 전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연준의 평가에 맞춰져 있습니다. <로이터>는 "최근 투자자들은 연준의 금리 경로보다 전쟁이 인플레이션 전망을 어떻게 바꿀지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전쟁의 가장 직접적인 경제 충격은 에너지 가격입니다. 중동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치솟았고 휘발유 가격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지속될 경우 에너지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브렌트유 가격이 3~4월 평균 배럴당 약 98달러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전쟁 이전 수준으로 유가가 안정되는 시점도 올해 4분기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 경우 2026년 미국 인플레이션은 연말 기준 2.9%까지 상승할 수 있으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크게 웃돌 경우 물가 상승률이 3.3%까지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금융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기대가 빠르게 후퇴하고 있습니다. 연초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올해 여러 차례 금리 인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최근에는 인하 시점이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연준이 금리를 상당 기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이 글로벌 통화정책 환경을 흔든 두 번째 사례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 국제공항에 도착한 모습. (사진=AFP 연합뉴스)
"트럼프 전쟁, 글로벌 통화정책 환경 흔든 두 번째 사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럽과 신흥국 중앙은행들도 비슷한 고민에 직면했습니다. 유럽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만큼 중동 리스크에 더욱 취약합니다.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들은 최근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 전망을 다시 바꿀 수 있다며 경계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아힘 나겔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는 "현재의 에너지 가격 상승이 광범위한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ECB는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신흥국에서는 금리 인하 사이클이 사실상 중단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중앙은행 분석을 인용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에너지 공급의 상당 부분이 차단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경우 유로존 인플레이션이 0.8%포인트 이상 상승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제시됐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전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이 글로벌 통화정책 환경을 흔든 두 번째 사례라는 평가도 제기됩니다. 지난해 4월 트럼프 행정부가 단행한 대규모 관세 조치에 이어 이번에는 중동 군사 충돌이 에너지 가격과 인플레이션 전망을 자극하면서 중앙은행들의 정책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이터>는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성장 둔화와 함께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살아날 수 있어 통화정책 전망을 재조정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뉴욕타임스> 또한 "이 전쟁은 전 세계 소비자와 기업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대통령 스스로 미국 경제의 향후 경로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