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지난 27일 밸류업 1년을 맞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지난해 기업가치 제고 계획 즉 밸류업 계획 공시를 지원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확정한 날로부터 1년을 기산했다고 합니다. 밸류업지수는 이보다 늦은 9월에야 발표됐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거래소에 따르면 그동안 밸류업 공시를 낸 기업들의 주가가 공시하지 않은 기업들뿐 아니라 주식시장 전체 평균에 비해서도 좋았다고 하고, 주가순자산비율(PBR)도 소폭 개선됐다고 하니 밸류업 정책이 의미가 있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1년간 153개사 공시…많은 게 아닌데
이날 거래소는 연기금, 자산운용사, 상장기업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밸류업 확산에 기여한 우수기업을 시상하고 기념 세미나도 개최하는 등 밸류업 첫해를 자축했습니다.
거래소는 지난 1년간 상장기업 중 153개사가 밸류업 계획을 공시,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밝혔는데요. 전체 상장기업의 10%도 되지 않는 숫자입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공시를 미룬 기업도 있을 테고, 밸류업 공시에 관심이 없는 기업도 있을 겁니다. 주주들에게 자신 있게 밝힐 무언가가 없는 곳도 있겠죠.
사실 따지고 보면 밸류업 공시를 했다는 153개사 중에도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란 것이 구체적이지 않은, 막연한 기대 등 알맹이 없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게다가 밸류업지수에 포함됐던 기업들마저 밸류업 공시를 외면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용은 이런데 ‘시가총액 기준으로 약 50%의 기업이 참여했다’는 거래소 측 설명을 보자니 낯이 뜨거웠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주식시장 대표기업 삼성전자도 아직 밸류업 공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세우면 느낌은 전혀 달라질 테니까요.
논란의 기업들이 밸류업지수에 포함된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습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주주 이익을 훼손하는 결정을 반복한 고려아연이 밸류업이란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고, 기습 유상증자를 발표한 이수페타시스도 그랬습니다. 결국 이들은 이번 정기 리밸런싱 결과 구성종목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새롭게 밸류업지수에 포함되거나 살아남은 100종목은 밸류업이란 이름에 잘 어울리는 기업들일까요? 이에 대한 의견은 각양각색으로 나뉘겠지만, 밸류업이란 게 주주환원이 전부는 아닐 텐데 지난 1년간 쏟아진 밸류업 공시들이 마치 배당계획 공시처럼 보이는 것은 초기 밸류업의 성격이 아직은 제한적임을 보여주는 한 단면일 것입니다.
27일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1주년을 맞아 개최한 기념 세미나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사진=한국거래소)
밸류업보다 제도 개선 초점
밸류업의 첫 1년은 성과가 있었지만 새로운 정부 아래에서의 밸류업은 어떤 모습일지 예측이 어렵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 새 정부에서 이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할 확률이 가장 높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경우 밸류업보다는 상법 개정으로 대표되는 제도 개선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독립이사제, 집중투표제, 자사주 의무소각 등 투자자들이 바라던 것들이 다수 공약에 포함돼 오히려 밸류업보다 증시를 부양하는 데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증시에서 자산 대비 주가가 싼 저평가 기업이나 자사주가 많은 기업, 지배구조가 완성되지 않은 그룹의 지주회사 등의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이재명 시대의 자본시장을 미리 엿볼 수 있는 현상으로 풀이됩니다.
그 결과 시장에서 주목받을 기업들이 밸류업 구성종목 명단과 겹칠 수 있겠지만, 아닌 기업도 많을 겁니다. 현재 밸류업지수 편입 기준이 시장의 의견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계속 나오는 걸 보면 진짜 밸류업 투자 후보는 밸류업지수 바깥에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