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조선사에 가려진 중소형 조선사…“RG 지원 시급”

중소형 조선사, 실적 회복세 더뎌
'선수금환급보증' 발급 확대 요구
“절호의 기회, 시기 놓쳐선 안 돼”

입력 : 2025-06-12 오후 2:18:20
[뉴스토마토 박창욱·이명신 기자] 국내 조선업계가 대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활황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중소형 조선사들은 대형사의 실적 호황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형사들은 2022년부터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등을 통해 실적을 회복했지만, 중소형 조선사들은 2024년 들어서야 비로소 흑자 전환에 성공하는 등 회복이 더딘 상황입니다. 이에 업계는 대형사 뿐만 아니라 중소형사까지 함께 성장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그 해법으로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확대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RG는 선박 발주자가 선수금을 떼일 위험을 막기 위해 요구하는 필수 보증으로, RG가 있어야만 수주 계약이 가능합니다. 중소형 조선사들은 RG 발급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만큼, 보증 인프라 지원이 이뤄진다면 지속적인 수주와 함께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경상남도 거제시에 위치한 HJ중공업 거제공장. (사진=HJ중공업 제공)
 
국내 조선업계는 최근 전반적으로 실적 개선세를 보이고 있지만, 대형사에 비해 중소형 조선사는 비교적 뒤늦게 실적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2022년 3분기부터 영업이익 143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삼성중공업도 2021년 1조19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뒤 2022년부터 34억원 흑자로 돌아서며 실적 회복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반면 중소형 조선사들은 상대적으로 더딘 모습입니다.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으로 전환에 성공한 HJ중공업도 2023년까지 108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지만, 2024년 들어서야 9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가까스로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중소형 조선사들의 실적 개선이 늦어지는 데에는 '선수금환급보증(RG)' 확보의 어려움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RG는 선박 발주자가 선수금을 떼일 위험을 막기 위해 요구하는 필수 조건으로, 이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실상 수주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신용도가 높고 자본력이 탄탄한 대형 조선사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RG를 발급받을 수 있는 반면, 중소형 조선사들은 낮은 신용등급과 부족한 자본력 탓에 RG 발급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업 불황기 동안 파산한 중소형 조선사들의 사례가 있는 만큼, 금융기관들도 과거 재무 실적을 기준으로 보다 보수적인 심사를 적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HJ중공업이 인도한 7700TEU급 LNG DF 컨테이너선. (사진=HJ중공업 제공)
 
“RG 없으면 수주도 없다”
 
RG란 조선업체가 선박을 정해진 기한에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했을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을 뜻합니다. 즉, 조선업체가 배를 적기에 납품하지 못하게 되면 선주는 피해를 보게 되고, 이때 보증을 선 보험사나 은행이 피해액을 대신 지불하는 것입니다. RG라는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선주는 조선사에 선수금을 지급하고, 조선사는 이 자금을 기반으로 원자재를 확보해 선박 건조에 착수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RG는 수주 계약의 성립과 건조 시작을 위한 핵심 장치지만, 중소형 조선사에 대한 RG 발급 한도는 대형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조선업 RG 발급 현황’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국내 대형 조선사 3곳에 지원된 RG 규모는 100억달러(약 14조원)를 웃돌았지만, 대한조선과 케이조선 등 중형 조선사 2곳에 대한 지원은 약 7억9000만달러(약 1조원)에 그쳤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수주에 성공한 HJ중공업도 올해 들어서야 RG 발급을 놓고 금융권과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RG 부족으로 수주 계약이 실제로 취소된 사례도 있습니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케이조선은 2023년 8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수주하고도 RG를 확보하지 못해 계약이 파기됐습니다. 업계는 RG 부족으로 수주가 무산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정부가 조선사에 대해 100% RG를 직접 발급하고 있어, 중형 조선사들도 글로벌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RG가 없으면 사실상 수주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중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조선사에 RG를 발급해주지만, 한국은 계약을 따내고도 RG 한도 부족으로 계약이 무산되면서 수주와 매출이 직결되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4월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정부-은행 발 맞춰야”
 
이 같은 업계의 요구에 정부도 대응에 나섰습니다. 정부는 지난 4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특례보증 확대 △발급 기관 다변화 △재무 여건 개선의 신속 반영 등을 담은 ‘조선 RG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상반기 중 무역보험공사의 특례보증 잔여 한도(1755억원) 내에서 RG 발급을 신속히 지원하고, 현행 1200억원 수준인 정부 출연금도 1700억원으로 늘리면서 보증 한도를 상향 조정할 계획입니다. 또 현재 산업은행에 집중된 RG 발급 기관을 시중은행 등으로 다변화할 방침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5월 결산 결과를 반영해 재무구조가 개선된 기업에 대한 구체적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올 상반기 내 중소형 조선사 대상 수주 가이드라인도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정책 실행은 여전히 더딥니다. 5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RG 지원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고, 정부가 교체되면서 상반기 내 수주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합니다. 정부 출연금도 500억원 증액되긴 했지만 보증 한도가 대폭 상향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지원 정책이 초기 단계라 다소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며 “추가 지원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시중은행들도 RG 확대에 협조할 뜻을 내비쳤지만, 은행이 일방적으로 책임을 떠안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형 조선사에 대한 RG 발급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향후 RG로 인해 은행이 손실을 입게 될 경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보호 장치가 마련된다면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역할뿐 아니라 금융권의 적극적인 참여도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 만큼, 이 시기를 놓쳐선 안 된다”며 “민간 은행들도 일정 수준의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RG 발급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의 정책과 금융기관의 협력 관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창욱·이명신 기자 pbtk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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