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산림·황무지·하천 부지 등 거친 땅을 개간해 농경지로 일궈온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는 선조들의 철학적 지혜와 과학기술이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자 K-농업 물결의 자산으로 통합니다.
중국에 의존하던 시간과 절기 체계를 벗어나 독자적인 농시를 만든 계기가 된 조선시대부터 미래 농업까지 K-농경기를 한눈에 엿볼 수 있는 국립농업박물관에는 대표적 소장 유물인 해시계 '앙부일구'가 우리 농시를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가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지만 기존 문화재로 지정된 여타 박물관들의 앙부일구와는 다른 조선 후기 실용화된 해시계로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 삶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국립농업박물관은 오는 9월14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을 기획 전시한다. (사진=뉴스토마토)
"풍년을 기원하다"
지난 16일 <뉴스토마토>가 경기도 수원의 국립농업박물관을 찾았을 때는 흥선대원군의 별서, 석파정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앙부일구와 휴대성을 갖춘 크기의 해시계들이 기획 전시돼 있었습니다.
국가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국립농업박물관의 앙부일구는 기존 4개의 다리와 다른 3개의 받침대로 실용성이 강조된 모습입니다. 이한철이 그린 흥선대원군의 별서 '석파정도'를 보면, 석제 받침대 위에 올려진 앙부일구의 다리가 3개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구형 몸체와 석제 받침대로 이뤄진 해당 해시계는 2022년 국립농업박물관 설립 전인 지난 2021년 독일 부퍼탈 시계박물관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왔습니다.
특히 국립농업박물관이 소장한 '앙부일구'는 물론 다양한 형태의 해시계 12점을 살펴보면, 하늘을 관찰하며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읽고 농사 시기를 가늠해온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과학기술의 발전을 볼 수 있어 의미가 큽니다.
조선시대 절정의 해시계는 중국에 의존하던 시간과 절기 체계를 벗어나 독자적인 농시를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K-해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를 넘어 하늘이 전하는 질서와 의미를 읽어내는 문화적 산물이자 기상 관측과 농업 연구의 중요 결정체인 겁니다.
조선 세종대에는 우리 실정에 맞는 역법과 시간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장영실을 비롯한 학자들과 함께 해시계와 다양한 천문기구를 제작하고 우리 풍토에 맞는 농사 서적을 편찬했습니다. 이를 통해 날씨의 변화를 더 정확하게 예측하고 체계적인 농사 시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조선 정조 22년 농업 진흥을 위해 반포한 <어제권농정구농서윤음>을 보면, '국가의 근본은 농업에 있고 이를 진흥시켜야 국가가 유지된다'는 뜻이 새겨 있습니다. 농사에 있어 시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윤음으로 우리나라 농업 속 시간을 되새겨본 가치가 농업 관련 전시·교육·체험 활동 공간의 당위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국립농업박물관은 오는 9월14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을 기획 전시한다. (사진=뉴스토마토)
"공공박물관 목적·기능 강화해야"
하지만 명실상부한 국립농업박물관의 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국립농업박물관은 2021년 6월 국립농업박물관법 제정 이후 이듬해 2월 설립, 2022년 12월 개관해 연혁이 짧습니다.
설립과 오픈에 주력하면서 그동안 백지나 다름없던 농업박물관은 농업·농촌 역사·문화, 미래 농업에 관한 유물·사료의 수집·보존·관리·연구·전시·체험·교육의 가시적 성과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물관의 중요한 기능은 '학술 연구'입니다. 우리 유산을 발굴하고 지키려는 학술 연구에 대한 책임감은 공공 박물관으로서의 목적과 기능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공공 박물관으로서의 목적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술 연구만을 위한 필수 인력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오경태 국립농업박물관장은 "박물관은 철저하게 학술적 고증이 전제돼야 한다. 전시장은 갖다 놓으면 되지만 박물관의 개념은 학술적 고증이 되지 않은 걸 전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전문적으로 학술만 전담할 부서와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국립농업박물관의 학예연구사는 19명입니다. 이 중 경력이 쌓여 독립적으로 전시·학술·유물 관리 등을 할 수 있는 분은 6명입니다. 그마저도 3명은 보직자로 학술 기능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스스로 기획이 가능한 학예사는 4년 이상 근무자로 전시·학술·유물 관리 등 다양한 경력을 필요로 한 재원입니다.
특히 6만4000㎡ 규모의 부지에는 전시동을 비롯해 관람객들이 체험하고 휴식할 수 있는 식물원, 교육동, 체험동을 갖추고 있어 총 200억원 예산의 상당수가 운영비로 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욱이 개관 이후 입장객이 꾸준히 증가하는 데다, 유물 기획 전시에 사용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오히려 예산이 줄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옵니다.
기획 전시 관계자는 "개관 첫해 4만6500명에서 지난해 57만명에 육박했다. 올해 5월까지 누적 관람객은 140만명을 넘어선 상황"이라며 "식물원, 교육동, 체험동 등 관람객을 위한 농업 문화 확산을 위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오경태 국립농업박물관장은 16일 수원에 위치한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국립농업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앙부일구가 국가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길 소망하며, 농업의 역사 속 과학기술 발전이 끼친 영향과 그 가치를 알아보고 미래 산업으로서 농업의 역할을 알아보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국립농업박물관)
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