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주요 손해보험사들이 장기보험 부문 부진으로 실적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출혈경쟁이 벌어졌던 간병인 보험 등 장기보험에서 손해율이 크게 높아졌는데요. 손해율이 오르면 보장은 축소되고 보험료는 인상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어 보험사들이 보험계약마진(CSM) 확대를 위해 벌이는 출혈경쟁을 멈춰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장기보험 상반기 순이익 발목
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000810)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조247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1%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메리츠화재는 9977억원에서 9873억원으로 1%,
현대해상(001450)은 8330억원에서 4510억원으로 45.9%, KB손해보험은 5714억원에서 5581억원으로 2.3% 각각 줄었습니다.
주요 손보사들의 실적 악화는 보험손익 축소에서 비롯됐습니다. 특히 보험손익 상당 부분이 장기보험 부문 부진에서 기인했는데요. 올해 상반기 삼성화재의 장기보험 손익은 833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9%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메리츠화재는 6996억원으로 19%, 현대해상은 2980억원으로 59.3%, KB손보는 4861억원으로 22.6% 각각 줄었습니다.
손보사들은 보험손익 감소분을 투자손익으로 메우며 당기순이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삼성화재의 투자손익은 1조50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6% 늘었고, 같은 기간 메리츠화재는 6048억원으로 53%, 현대해상은 2360억원으로 15.8%, KB손보는 2624억원으로 163.5% 증가하며 투자손익이 당기순이익을 방어했습니다.
과거 단기보험에 주력하던 손보사들은 장기 운용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보험 판매에 집중했는데요. 장기보험은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계약 장기 유지를 통해 포트폴리오 변동성을 낮추고, 회계·자본 측면에서도 미래이익을 꾸준히 실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동차보험 중심의 단기보험 위험을 분산하는 전략으로도 작용합니다.
그러나 장기보험 판매 경쟁이 과열되면서 지난해 간병인보험을 중심으로 출혈경쟁이 벌어졌습니다. 간병인보험은 가입자가 질병이나 상해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졌을 때 간병인을 고용하거나 입원 기간 동안 발생하는 간병비를 보장하는 상품입니다. 보험사 간 특약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해당 상품의 인기가 상승했고, 최근 4년간 보험금 지급액이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손해율이 크게 늘어나면서 보험사들은 보장 금액을 축소하거나 보장 범위 제한 등 대응에 나섰습니다.
메리츠화재는 지난 5월 간병인보험 특약 보장 금액을 기존 20만원에서 15만원으로 한 차례 낮춘 뒤, 같은 달 10일에는 다시 1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축소했습니다. 삼성화재, KB손해보험, 현대해상 등도 4월 중순부터 기존 20만원이던 보장 한도를 절반 수준인 10만원으로 줄였습니다.
지난해 암보험 시장에서도 경쟁이 심화했습니다. 보험사들은 암보험 특약과 보장을 늘리고 보험료를 낮추는 방식으로 고객 유치를 시도했는데, 손해율 상승이 우려되면서 일부 상품 판매를 중단하거나 보장 한도를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최근에는 암보험 특약을 다시 강화하는 경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격 경쟁 당시 손해율 악화가 예견됐는데,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장기 재원과 CSM 확보를 위해 판매했던 장기보험이 오히려 실적에 부담을 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장기보험은 보험사 입장에서 오랜 기간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상품"이라며 "보험사들이 전통 보험 상품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자 제3보험 등 장기보험에 눈을 돌린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지난해 장기보험 부문에서 가격 경쟁이 많았는데, 당시 팔았던 상품이 손해율을 늘렸다"며 "이번 상반기에도 보험손익이 대부분 줄었는데 가격 경쟁 때문"이라고 부연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제살깎기 경쟁, 소비자 피해로
손보사 간 출혈경쟁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이 경쟁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보장 한도가 되레 확대되는 등 실효성이 제한적입니다. 출혈경쟁은 손해율을 끌어올려 보험료 인상이나 보장 축소로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계약 해지 위험까지 높입니다.
금융당국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11월 보험상품의 '보장금액한도 산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지난 1월부터 시행하면서 출혈경쟁 제동에 나섰습니다. 보험사들은 상품을 신고할 때 가이드라인에 따라 실제 발생 가능한 평균 비용 등을 고려해 보장 한도를 설정해야 합니다. 특히 의료비 보장 담보는 실손보험 보장 범위를 반영해야 하며, 한도를 정할 때 고객이 가입한 다른 보험계약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보장을 축소하기보다는 실속 담보 중심으로 보장 금액이 오히려 늘어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보험사들이 보장 금액 한도 가이드라인 시행 후 '특정 경증질병 제외 수술비 담보'와 '상급종합병원 질병수술비 담보' 등을 새로 출시하면서 오히려 질병수술비 보장 한도가 증가한 것입니다. 금융당국이 보험사들에게 적정 보장 한도 산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가 없어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출혈경쟁의 여파가 결국 보험료 인상 등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출혈경쟁인 보험사 손익을 악화시키고 이는 보험료 인상과 보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장기보험료로 운영해서 수익을 내는 구조가 장기보험 출혈경쟁을 불러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서 교수는 "보험 업황이 좋지 않고 중소형사도 많이 생긴 상황에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지난해 손보험사 사이에서 장기보험 출혈경쟁이 발생하면서 올해 보험손익 실적이 악화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위해 기다리는 모습. (사진=뉴시스)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