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만년송의 절개를 넋두리하다

변치 않는 절개·장수·불멸의 상징 '소나무'
'세한삼우' 꿋꿋한 민족의 상징성
광복 팔순과 국민주권정부,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만년송처럼 굳건한 '민족의 기개'
분단과 대립 넘어선 공동체적 통합 이룩해야

입력 : 2025-08-25 오전 9:00:00
[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사계절 내내 푸른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는 변치 않는 절개, 장수, 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왔습니다. K-전통을 들여다보면 매화·대나무와 함께 '추운 겨울철의 세 벗(세한삼우)'이라는 의미로 꿋꿋한 민족의 상징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중 꿋꿋이 버티는 강인한 생명력의 표현이자 깊이 뿌리내린 민족의 영속성을 만년송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저항과 불굴의 정신을 말하기도 하지요. 8월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번 주제는 광복 팔순의 의미와 순국선열의 정신을 다뤄봤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꺾이지 않는 소나무의 생명력을 민족의 저항 정신에 비유했습니다. 일제가 민족정신을 꺾으려 했지만 만년송처럼 굳건한 민족의 기개는 시들지 않았죠.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데니 태극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는 애국사 한 소절이 이러한 맥락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년송이 천년을 살아내듯, 독립의 의지는 세대를 이은 영속의 정신이 아닐까요. 그 정신은 단순히 못된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남을 의미하기보단 굽히지 않는 정의의 자립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영속적 과업이 시간·영원성과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의 굴레를 벗어나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벅찬 해방의 순간, 광복은 경제적 번영, 민주주의 부흥의 기대와 동시에 분단의 상처도 안고 있습니다. 
 
해방의 환희가 분단의 그림자로 덮였던 미완의 한반도. 민주주의 또한 군사독재와 권위주의를 거쳐 어렵게 정착했지만 오늘의 정세는 민중 의지와 연대를 벗어난 갈등·불신의 시대를 또다시 경험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애국지사인 신채호 선생의 말로 알고 있지만 서양에선 자주 등장하던 말입니다. 예컨대 영국 처칠도 비슷한 구호를 외친 바 있죠. 어찌됐든 역사를 기억해야 할 중요성이 크다는 건 역사가 되풀이되기 때문입니다. 
 
독립유공자 후손, 어린이 합창단원 등 참석자들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기념 타종행사'에서 광복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1592년 임진왜란. 일본 침략에 대비하지 않던 조선왕조는 서울을 버리고 점령의 수모를 당했습니다. 1627년 정묘호란, 1636년 병자호란까지 되풀이된 역사가 그것이죠. 
 
그때마다 왕조는 나라를 버렸지만 나라가 망하지 않았습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군이 나라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의 울림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죠. 
 
윤석열 탄핵으로 출범한 국민주권정부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닙니다. 광복 80년의 역사적 물음에 응답하는 또 하나의 실험대로 읽힙니다. 광복 당시 여운형 선생이 좌우 합작을 통해 민족의 통합을 모색했듯, 민주적 절차를 통해 다시금 공동체적 연대를 실천해야 하는 현대적 재현의 대동 사회를 말이죠. 
 
'자유'와 '공동체'의 철학적 변증법을 논하자면 민주주의 자유를 회복했지만, 공동체적 통합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나옵니다. 광복 80년을 지나는 이 시점 글로벌 무역 정세까지 확대하면 진정한 독립국가인가라는 의문을 더해 새로운 해방을 시험대에 올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지난 24일 경기도 박물관에는 광복 80주년 맞이 '여운형-남북 통일의 길' 특별전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분단과 대립을 넘어선 공동체적 통합을 이룩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고뇌하면 역사를 기억해야 할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1945년 8월15일 광복 때도 조선에 큰 기쁨과 혼란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 친일파에겐 날벼락처럼 찾아온 해방이지만 해방 직후 혼란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여운형 선생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조선 땅에 하나 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자 조선인민당, 근로인민당 등을 만들며 좌우합작운동을 이끌었던 역사적 배경상이 있었죠. 친일파를 제외한 우리 민족 모두를 아우르는 통일 정부를 꿈꾸던 그는 '혁명가는 침상에서 죽지 않는다'는 말로 여러 번의 테러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좌우와 남북 등 생각과 지역을 넘어 힘을 합치고자 한 그의 꿈. 오늘날 절실하고도 진정한 합작의 길이지 않을까요.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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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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