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자사주 소각’…재계 “방패도 달라”

‘자사주 의무 소각’ 3차 상법 개정 본격화
대주주 지배력 강화 악용 사례 차단 취지
재계 반발 의식…배임죄 폐지 카드 제시
자사주 보유율 높은 재계…롯데 27.5%
학계 “자사주 매입 후 악용 사례 수정해야”

입력 : 2025-08-27 오후 4:59:13
[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노란봉투법과 1·2차 상법 개정안에 이어 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 작업을 본격화하자 재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여당은 자사주가 주주환원이 아닌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보고 다음 달 정기국회에서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반발을 의식해 그동안 재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배임죄 폐지 카드를 당근으로 제시한 가운데, 재계는 배임죄 폐지는 환영하지만 연이은 상법 개정 드라이브가 경영권에 심대한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처리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7일 정치권과 재계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자사주 취득 후 일정 기간 내에 소각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자사주 의무 소각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 5건이 계류돼 있는데, 임직원의 보상 등 정당한 사유를 제외하고 취득 즉시 또는 최대 1년 이내에 자사주를 소각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 후 경영권 방어 수단 또는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악용하는 폐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기에 이를 차단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민주당은 2차 상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25일 국회에서 자사주 제도의 합리적 개선 방안토론회를 열고 관련 논의에 본격 착수한 상태입니다. 오기형 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3차 상법의 출발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라며 논란이 있겠지만 정기국회 내내 심도 있게 논의하면서 고민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민주당은 노란봉투법에 연이은 상법 드라이브에 재계의 우려를 의식해 일종의 당근책으로 배임죄 완화 등 경제 형벌 합리화 제도를 함께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민주당은 전날 권칠승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배임죄를 비롯해 최고경영자(CEO) 형사처벌 리스크 완화 등 관련 입법 과제를 도출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배임죄 개선 및 폐지를 요구해온 재계에선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경제 8단체는 기업이 미래를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경영 판단 원칙을 명문화하고 배임죄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기업이 혁신과 성장에 매진할 수 있도록 경제 형벌과 기업 규모별 차등규제·인센티브를 대대적으로 정비해 나갔으면 한다고 했습니다현행 배임죄는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손해 발생 위험만으로 처벌이 가능하고 모험투자 과정에서도 배임죄가 적용된다는 지적이 있어왔습니다. 특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인 배임죄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가중처벌 규정으로 40년 전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어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데다 형량도 너무 무겁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주요 그룹 계열사 자사주 보유 현황 (그래픽=뉴스토마토)
 
그러나 배임죄 카드에도 재계 반발은 거센 모양새입니다. 오랜 기간 축적된 자사주를 단기간에 소각하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투기자본 등에 의한 경영권 위협 위험이 심대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특히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 같은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는 상황에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 되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국내 주요 그룹들은 자사주를 상당 부분 보유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이를 전부 처리해야 합니다. 주요 그룹 중에서 롯데지주는 전체 지분의 27.5%에 달하는 자사주를 보유 중입니다. 지난해 말 32.5% 비중이었던 자사주는 지난 65%를 롯데물산에 처분하며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롯데지주는 약 15% 내외의 자사주 추가 매각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SK그룹도 지주사인 SK㈜의 자사주 보유 비중이 24.8%로 높은 편입니다. 그 밖에 주요 그룹의 자사주 비중은 두산 17.9%, HD현대 10.5%, 한화 7.45%, 포스코홀딩스 6.56%, 삼성물산 4.6%, LG㈜ 3.85%, 현대차 1.3% 등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 취득의 목적은 경영권 방어가 아니라 주주가치 제고 차원이 가장 큰데 무조건 소각을 하라는 것은 법인의 사유재산 침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취지라면 다른 핀 포인트 규제로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자사주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악마화시키는 것으로 (소각 의무화는)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한 편협한 시각이 굉장히 우려된다고 했습니다
 
재계에선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기 위해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장치 역시 같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한국경제인협회를 비롯한 경제 8단체도 지난 25일 2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입장문을 통해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의 경영권 방어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습니다
 
테헤란로를 따라 늘어선 서울 강남구의 고층 건물들. (사진=연합뉴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법 개정 등 현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기에 재계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재계는 일단 배임죄 폐지 등 형사처벌 완화 정책을 기다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학계에서는 자사주를 통한 악용 사례가 명백히 있어온 만큼 소각 의무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총수가) 자신의 돈을 안 들이고 자사주를 매입해 경영권 방어에 쓴 사실 자체가 문제라며 자사주 소각 의무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문제들을 수정할 조치는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한 뒤 소각을 안 하고 보관하고 있다가 유통을 시키면 주주환원 측면의 효과가 덜 나오는 측면이 있고 신규 유상증자를 할 때 일정 부분 주식을 배정 받으면서 경영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편법 수단으로도 많이 쓰고 있다이를 개선하기 위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은 긍정적이라 본다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경영권이 흔들린다는 것은 기업의 변명이라며 결과적으로 경영을 잘하느냐의 문제로 기업가치를 높이면 자사주 소각을 하더라도 투기자본이 주식을 매수하는 데 부담을 느끼기에 타깃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습니다. 아울러 서 교수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지 않을 경우 자사주를 소각할 기업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의구심이 있다불가피하게 의무화라는 조치를 들고 나온 것인데 이와 반대로 성실하게 주주 활동을 잘하는 기업에 대해 인센티브 차원의 보완 장치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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