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망루 오른 북·중·러…66년 만

탈냉전서 다시 신냉전으로…국제 질서 '대격변'
김정은, 다자외교 무대 '데뷔'…대미 협상력 제고

입력 : 2025-09-03 오후 5:40:45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냉전 시절인 1959년 중국 국경절(건국기념일) 열병식 이후 66년 만에 북·중·러 3국 정상이 베이징 톈안먼(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섰습니다. 탈냉전을 지나, 다시 신냉전의 개막을 알린 순간으로 평가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세계가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며, 사실상 미국을 겨냥했습니다. 북·러와 함께 '반서방'·'반미' 연대의 중심에 서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시진핑 "평화와 전쟁, 하나 택해야"…반서방 연대 '과시'
 
3일 오전 9시(현지시간)부터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시작된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대회(열병식)에는 시 주석과 함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정상급 외빈 20여명이 자리했습니다. 
 
톈안먼 망루에는 시 주석을 중심으로 왼쪽에 김 위원장, 오른쪽에 푸틴 대통령이 섰습니다. 1959년 김일성·마오쩌둥·흐루쇼프 회동 이후 66년 만에 북·중·러 정상이 다시 함께 서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한 겁니다. 이는 사실상 신냉전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면서, 동시에 반서방 연대의 본격적인 결속을 과시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닛케이 신문>은 "훗날 뒤돌아보면 중국과 러시아, 북한 정상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2025년 9월3일이 역사적 분기점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날 시 주석의 열병식 기념 연설은 반서방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현재의 세계 정세를 "오늘날, 인류는 다시 평화냐 전쟁이냐, 대화냐 대결이냐, 상생이냐 제로섬이냐의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중국 인민은 역사의 올바른 편, 인류 문명 진보의 편에 굳건히 서서, 평화 발전의 길을 견지하며, 각국 인민과 손잡고 인류 운명 공동체를 구축할 것"이라고 천명했습니다. 해당 메시지는 사실상 미국의 패권 경쟁과 무역전쟁을 염두에 둔 발언입니다. 
 
시 주석은 "역사는 인류의 운명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에게 경고한다"며 "각 국가와 민족이 오직 평등하게 대하고, 화목하게 지내며, 서로 지켜주고 도와야만 공동의 안보를 수호하고 전쟁의 근원을 없애,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10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했던 70주년 열병식에서 주변국의 우려를 의식해 "어떤 길을 가더라도 영원히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고 확장을 꾀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던 메시지가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에 따라 변화한 셈입니다. 다만 당시에도 시 주석은 '군 30만 군축'을 이야기하면서도 '첨단 군대'로 거듭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진핑(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3일(현지시간)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리는 베이징 톈안먼 광장으로 걸어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중·러 결속 강화…트럼프 "반미 음모" 
 
70분간 이어진 열병식과 분열식을 통해 중국이 발산한 메시지는 '새로운 질서'의 창출입니다.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에서 벗어나 반서방 연대를 통한 다자주의를 추구하겠다는 겁니다. 이를 위해 시 주석은 분열식에서 군사력을 과시하며 국제사회의 영향력을 입증했습니다. 
 
중국은 이날 전 지구가 사정권인 핵 탑재 미사일 둥펑-5C와 '괌 킬러'로 불리는 DF-26의 개량형인 DF-26D, 요격 미사일인 훙치-29 등의 방공 시스템까지 공개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도 현지에서 양자회담을 진행하면 결속을 다졌습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같은 차량에 동승해 회담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에 감사를 표하며 양국 관계가 우호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양국 관계가 모든 측면에서 발전하고 있다며 "러시아에 대한 지원은 형제의 의무"라고 했습니다. 
 
이날 열병식은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다자외교 무대에 데뷔한 날이기도 합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천안문 망루에 시 주석과 나란히 서게 되면서 '몸값'을 높이는 효과를 봤습니다. 이를 통해 향후 미국과의 직거래에서 협상력을 제고하는 데 활용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또 이 과정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공식 핵보유국인 중·러 정상과 나란히 서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핵보유국 지위도 강조하게 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북·중·러의 연대를 '반미 음모'라고 규정하며 반발했습니다. 전승절 열병식 시작 전 "걱정할 것 없다"던 메시지가 변화한 겁니다. 
 
이와 관련해 <CNN>은 "중국이 미국의 적대국과 권위주의 지도자, 우방들을 불러 모은 게 미국 대통령에 모욕감을 안겨주기 위한 의도였다면 완벽히 효과를 발휘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관세 압박, 약소국 겁주기, 미국 우선주의 등의 정책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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