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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9월 10일 17:12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금융당국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며 사모펀드(PEF) 업계 전반에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그동안 자율적 원칙에 가까웠던 코드가 평가·제재 수단으로 구체화되는 가운데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위탁운용사 선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PEF 운용사들은 책임투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사실상 자금 모집 과정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2차 상법 개정안이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여당 내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과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법안을 후속 과제로 논의 중이다.
(사진=국회의사당)
적용 범위 늘리고 ‘PEF 해산’ 법적 근거 마련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며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용 범위를 상장주식에 한정하지 않고 PEF 투자 영역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막대한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책임투자 원칙을 강제하겠다는 구상이다.
개정안 핵심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투자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의 이행 여부를 평가·관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율적 도입에 기반해 상장사 지분 투자 중심으로 활용됐으나, 앞으로는 사모펀드 위탁운용사 선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PEF가 차입매수(LBO)나 자산 매각, 고배당 등을 결정할 경우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하며, 해당 행위를 제한하거나 중단시킬 수 있도록 하는 권한도 부여된다. 이 외에도 위탁운용사(GP)가 허위 보고를 하거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사모펀드를 해산할 수 있는 근거 조항도 마련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밝힌 제도 개선 흐름과도 맞물린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하반기부터 연기금 및 운용사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여부를 매년 평가해 공개하는 제도를 시범 도입할 예정이다. 평가 결과는 A·B·C 등급으로 분류되며, 2년 연속 C등급 이하를 받은 기관은 가입자 명단에서 퇴출될 수 있다. 한국ESG기준원이 평가를 담당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투자 대상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 향상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의결권 행사 등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요구하는 원칙이자 행동 지침이다. 고객과 수익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수탁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제도다. 2016년 도입된 이후 9년째 시행 중이지만, 실질적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기관투자자의 자율 참여를 전제로 해 의무성이 떨어졌고, 참여 후에도 이행 활동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사모펀드 업계는 단기 성과 위주의 투자 구조로 인해 책임투자와의 괴리가 크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꾸준히 책임투자 항목을 강화해 왔다. 2021년에는 기금운용 원칙에 ‘지속가능성’을 추가했고, 2023년부터는 GP 선정 시 책임투자 관련 배점을 대폭 확대했다. 이는 기존 상장주식 투자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대체투자, 특히 사모펀드 운용사 심사 과정에도 반영되고 있다.
(사진=MBK파트너스)
MBK,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외면…불이익 불가피
이 같은 비판은 지난해 터진 홈플러스 사태로 인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에선 사태 심각성에 따라 사모펀드 투자를 영구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 상황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금융정의연대 등은 지난 5일 홈플러스 파탄, 국민연금 투자 실패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공단이 최소 3년간 사모펀드 투자 위탁 운용사 선정 시 MBK파트너를 제외하고,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범위를 사모펀드 투자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정 관리를 신청한 사모펀드에 대해선 최소 3년간 투자 금지, 두 번 신청하면 6년간, 세 번 신청하면 투자를 영구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의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국민연금 등 연기금 자금을 위탁받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사실상 필수화된다. 이미 JKL파트너스(2017년), 스틱인베스트먼트(2017년), IMM인베스트먼트(2022년) 등 일부 PEF들은 자발적으로 코드를 채택했으나, 대형 PEF 중 상당수는 여전히 미도입 상태다.
대표적으로 국내 최대 PEF인 MBK파트너스도 아직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지 않았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국민연금이 MBK를 위탁운용사로 선정한 것을 두고 “책임투자 원칙을 무시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 법안이 시행되면 MBK를 포함한 미도입 PEF들은 제도적 불이익을 피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다만 PEF 업계 내부에서도 책임투자 압력이 커지면서 자발적인 도입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74개 PEF가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 중이며, 전체 참여 기관은 247곳에 달한다. 이는 2022년 10월 기준 PEF 59곳, 기관이 207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확대되는 추세다. 아직까지 스튜어드십 코드 기반의 주주권 행사 사례가 많지 않지만, 관련 내용이 법제화된다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치연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 과장은 <IB토마토>에 “스튜어드십 코드 확대 적용과 관련해선 연기금을 포함한 시장 참여자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취합해 세부 사항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라며 “시범운영을 통해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평가 기준을 정교화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