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느냐가 '다질환 축적 속도'를 늦출 수도, 오히려 가속할 수도 있다. (사진=ChatGPT 생성)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노년기에 병은 하나씩 오지 않습니다. 심장·혈관, 뇌·정신, 근골격 질환이 동시에 겹겹이 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에이징(Nature Aging)>에 게재된 스웨덴의 장기추적 연구는 “무엇을 먹느냐”가 이 ‘다질환(multimorbidity) 축적 속도’ 자체를 바꾼다고 밝혔습니다. 스톡홀름 ‘SNAC-K’ 코호트 2473명을 최장 15년 따라가 본 결과, MIND·AHEI·대안 지중해(AMED) 식단을 잘 지킨 그룹은 매년 만성질환이 쌓이는 기울기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았고, 반대로 식이 염증성이 높은(EDII 고점수) 식단은 누적 속도를 끌어올렸습니다.
15년 뒤 ‘질환 개수’까지 갈랐다
연구진은 ‘개별 영양소’가 아니라 식단 패턴으로 접근했습니다. MIND(지중해+DASH의 두뇌 건강 특화)·AHEI(하버드 식사질 지표)·AMED(대안 지중해식) 등 세 가지 식단은 채소·통곡·콩·견과·생선·올리브유·적정 유제품을 강조하고 가공육·설탕·정제곡물·포화지방을 줄인 것입니다. 반면에 EDII는 식단의 염증 유발/완화 성향을 점수화한 것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가공육·설탕음료·정제곡물 비중이 큰 것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연간 질환 누적 속도(β)’를 식단 점수와 연결해 분석했습니다. MIND −0.049, AHEI −0.051, AMED −0.031로 나타난 반면, EDII는 +0.053(표준편차 1 증가당)으로 ‘가속’ 효과를 보였습니다. 좋은 식단 준수군은 15년 후 만성질환이 평균 1.1~2.5개 적었고, EDII 상위군은 2.1개 더 많았습니다. 효과는 심혈관·뇌정신계에서 뚜렷했고 근골격계에선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식단이 궤적(trajectory)까지 바꿔”…여성·초고령층서 일부 더 뚜렷
연구진은 장기간 질환이 쌓이는 궤적 모형도 구축했습니다. MIND·AHEI 충실군은 ‘빠른 축적’ 궤적에 들 확률이 낮고, EDII 고점수군은 ‘가장 빠른 심혈관 궤적’에 속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하위분석에선 일부 여성·78세 이상 초고령층에서 보호 효과가 더 도드라졌지만, 다중비교 보정 후 상호작용의 통계적 유의성은 약화됐습니다. ‘개별 질환 위험’을 넘어 ‘동시다발적 질환 누적의 속도’에 식단이 작동했다는 분석입니다.
그 원인은 ‘인플라마에이징’과 식이 염증성입니다. 노화는 저등급 만성염증(일명 인플라마에이징, inflammaging)과 맞물립니다. 과일·채소·통곡·콩·생선·올리브유를 중시하고 가공육·정제당·포화지방을 줄이는 지중해·MIND·AHEI는 염증 표지(IL-6, CRP)를 낮추는 경향이, 반대로 EDII는 높이는 경향이 기존 연구에서 확인돼 왔습니다. 이번 결과도 이 경로를 재확인한 셈입니다.
“식단은 교정 가능한 위험 요인”
이 연구를 수행한 카롤린스카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는 “건강한 식단은 만성질환 축적을 늦추고, 염증성 식단은 가속한다”고 요약했습니다. 의료 전문 매체들도 “노년 다질환 진행을 늦추는 현실적 레버가 식단”이라고 해설했다. 다만 연구 대상이 스웨덴 도시 거주 고령자(식사 질과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음)여서 일반화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식단은 당장 바꿀 수 있는 행동이자, 연간 질환 누적 기울기를 완만하게 만드는 가장 손쉬운 개입”이라고 말합니다. 초고령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한국, 노년기 진료비의 진짜 부담은 ‘질환의 개수’와 ‘누적 속도’에서 나옵니다. 이번 스웨덴의 15년 데이터는 ‘나의 젓가락이 향하는 방향이, 내 질환 그래프의 기울기를 바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식탁에서 시작하는 ‘다질환 감속 전략’이야말로 가장 조용하지만 강력한 건강정책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적용가능한 방식으로는 매 끼 채소 2종+통곡 1종을 기본선으로, 생선·콩/두부·견과를 주 3~5회 이상 즐기고, 올리브유·카놀라유 등 불포화지방 요리로 전환하는 것, 가공육이나 설탕음료, 정제 간식은 어쩌다가 즐기는 ‘행사(이벤트) 음식’으로 빈도·양을 낮추는 것입니다.
DOI: 10.1038/s43587-025-00929-8
2473명을 15년간 추적 관찰 기간 동안 식이 패턴의 누적 준수도와 연간 총 만성 질환 누적률 간의 연관성. 식단의 특성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사진=Nature Aging)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