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설관' 금융당국 개편…모피아는 웃는다

입력 : 2025-09-12 오후 2:02:38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감독원 쪼개기를 골자로 하는 금융당국 조직 개편이 '위인설관(자리 만들기)'식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감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인식인데요. 금융위원회에서 간판만 바꿔 단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 권한을 키우면서 금융 관료들의 자리만 늘리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금융당국 조직 개편안이 정부 내각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모피아(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출신 관료)'의 합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금감위로 간판만 바꾸는 금융위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 조직 개편이 금융감독 기능 강화를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금감원 쪼개기에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금융감독정책 컨트롤타워인 금감위를 신설하지만, 금융위에서 간판만 바꿔 다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데요. 금융위 내부에서도 당초 '금융위 해체설'로 침울했다가 최근 반색하는 분위기입니다. 
 
정부 조직 개편 중 금융당국 개편은 기획재정부 권한 축소를 위해 정책 기능(재정경제부)과 예산 기능(기획예산처)을 나누는 작업에서 비롯됐습니다. 금융위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재경부에 붙이고, 감독 기능을 살려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재편하는 것입니다. 금감위 산하에 금감원과 금소원을 별도 공공기관으로 배치하는 방안입니다. 
 
금감위원장과 금감원장을 겸임할 수 없도록 하면서 인사청문회를 거친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금감위원장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합니다. 기존 '금융위-금감원' 체제가 '금감위-금감원'로 바뀌는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금융정책 부문을 떼어내는 것이 뼈아플 수 있지만, 금감위로 탈바꿈한 조직을 키우는 계기를 살릴 수 있게 됐습니다. 실제로 금융사를 제재하는 권한과 분쟁조정 권한을 금감원 아닌 금감위에 이관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금소원 분리, 공공기관 지정과 맞물려 금감원 권한은 대폭 축소됩니다. 
  
금소원 분리·신설을 두고서도 금감원 내홍이 커지고 있어 금감위가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습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신설되는 금소원에 검사와 제재 권한을 어디까지 부여하는 것이냐를 두고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며 "금감위로서는 교통정리를 위해 상위기관(금감위)이 총괄하는 것이 낫다는 논리를 들고 나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금융위원회 등을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해 내년 1월2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위원회 직원들이 사무실 앞을 오가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금감원 통제 필요" 논리 관철
 
신설하는 금감위를 실질적으로 감독 정책을 관리 설계할 수 있도록 확대 개편하는 방안이 부상하면서 금감위 인력도 확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간 국내 정책을 담당하는 인원은 재경부 소속으로 옮기고 50명 안팎으로만 금감위에 남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금감위가 금감원장을 겸임하지 않기로 했고, 금감위 권한 확대를 이유로 금감위 인원을 1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1999년 금감위가 처음 출범했을 때부터 2008년 금융위·금감원 분리 직전까지 금감위원장은 금감원장을 겸임해 왔습니다. 금감위 직원은 초창기 10명 남짓이었으나 점차 늘어나면서 금융위 분리 직전인 2008년에는 100명 이상이 됐습니다. 금융위 출범 이후 정책 기능에 감독 기능을 덧붙이면서 250명까지 늘었습니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금감위원장과 금감원장을 따로 두기로 한 만큼 금감위에 남는 금융위 직원들이 예상보다 많아진다는 추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금융당국 조직 개편이 금융위 해체 보다는 금감원 쪼개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셈입니다. 이창규 행정안전부 조직국장도 지난 2일 조직 개편안 방안 발표에서 "지금까지 금감원이 하는 역할에 비해 외부의 민주적인 통제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윤석열정부 때 이복현 전 금감원장이 무소불위에 가까운 힘을 휘두르며 월권 논란을 일으킨 것이 이 같은 문제의식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다만 조직 개편의 당사자인 금융당국 고위 인사들까지 같은 논리를 펴면서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직원 간담회에서 "강력한 권한을 가진 금감원에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세훈 부원장은 금융위 출신입니다. 
 
금감원의 한 직원은 "금융당국 간부라는 인사들이 지난 정부 때는 한마디도 못 하고 정권의 지시에 복종하더니, 정부가 바뀌니 금감원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을 바꾸는 모습이 개탄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금감원 직원들이 조직 개편 반대 시위를 수일째 이어가고 있지만, 이찬진 금감원장은 묵묵부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금감원 노동조합과 직원들의 금융당국 조직 개편 반대 시위에 대해 묵묵부답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 거버넌스 관련 전 금융권 간담회'에 이찬진 원장이 참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관료 출신 참모 합작품"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까지 현실화할 경우 금감원은 기획재정부(조직 개편 이후 재정경제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로부터 인건비와 예산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국회 차원에서도 기존 정무위원회에 더해 기획재정위원회의 감사를 동시에 받아야 합니다. 정부 조직뿐만 아니라 입법기관의 전방위적인 개입이 예상되는데요.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명분인 효율성과 독립성이 오히려 퇴보할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이재명정부 초대 내각 구성을 보면 기재부 출신들이 내각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을 비롯해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정우 국정상황실장 등이 기재부 출신입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행정고시를 통해 임관 후 기재부 요직을 거친 관료입니다. 김용범 실장은 문재인정부 때 금융위 부위원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금융당국 조직 개편 방향이 모피아들의 자리 만들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모피아(Mofia)라는 명칭은 금융을 담당했던 옛 재무부(MOF)와 마피아의 합성어입니다. 이들 모피아가 재경부와 예산기획처, 금감위, 금소원 등 신설되는 정부 조직 개편의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요. 각 부처의 장관급, 차관급으로 영전할 것일나는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교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감독 기능을 수행하는 금감원에 통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그간 금융위가 견지해온 주장과 맥락이 같다"며 "금융감독체계 개편이라는 국정 과제를 명분으로 금감원의 통제권을 쥐면서 관료들의 자리는 확대하는 쪽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감독원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직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로비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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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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