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롱비치 항만으로 본 '항만의 미래'

교량·터미널, 그리고 미래 '물류 관문'
항만 경쟁력, 철도·항로 등 종합 네트워크
'친환경 전환' 2035년까지 트럭도 '제로화'
국가 에너지 전략까지 품은 '항만 전략'

입력 : 2025-09-29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최근 기자는 북극항로 시대를 외쳐온 새 정부 의지에 비해 차갑기만 해양수산 예산에 대해 본지 9월3일자 칼럼(바다의 미래 여는 '7조 파도')으로 다룬 바 있다. 함축하면 북극항로 시대를 외쳐온 의지치곤 차가운 숫자이나 새로운 돛대와 항로를 비출 새로운 등불이 담겼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윤석열정부가 정해놓은 내년도 예산을 새 정부 한 달여 만에 바꾸기란 쉽지 않은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해양 르네상스'의 포문을 열 밑그림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단순히 숫자의 증가 여부가 아닌 실행의 깊이에 의미를 뒀다. 
 
태생이 그래서인가. 또다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해야 할 해양수산부의 명운과도 같다고 마침표를 찍긴 했지만 여전히 아쉬운 생각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전체 해양수산 분야별 증감 중 가장 낮은 증가 폭을 기록한 항만 예산 때문이다. 미래를 열 연구개발(R&D) 등 투자 역량에 정책적 우선순위가 반영된 걸 모르지 않지만 항만의 중요성을 단순히 SOC 사업으로만 본 건 아닌지 내심 우려스럽다. 
 
 
지난 14일 부산 강서구 부산항 신항 부두에서 수출입 컨테이너 선적 및 하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니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소위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엔 항만은 선박이 안전하게 정박하고 화물을 싣고 내릴 수 있는 장소 따위로 여길 수 있다. 좀 더 경제를 아는 이들이라면 물류와 무역의 중심지 역할인 경제 인프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말도 틀리진 않지만 단순히 물류 거점이 아닌 '국가 경제와 에너지 안보를 떠받치는 전략 자산'이라는 게 정답일 것이다. 또한 오늘날 항만이 직면한 과제의 집약이기도 하다. 
 
'국가 경제·에너지 안보를 떠받치는 전략 자산'이라는 말은 최근 한 세션장에서 화상을 비춘 노엘 하세가바(Noel Hacegaba) 미국 롱비치 항만청 부청장의 연설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한화로 420조원인 3000억달러 규모의 교역을 처리하는 롱비치 항만은 미국 서부에서 가장 혁신적이면서도 '친환경적' 항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엘 하세가바 부청장이 대표적으로 지목한 곳은 'Long Beach International Gateway Bridge'다. 우리나라 말로 직역하면 '롱비치 국제 관문 교량'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교량과 터미널, 미래 물류의 관문이라는 점에서 그 속뜻은 자명하다. 노엘 하세가바 부청장은 이 교량에 총 15억달러를 투입했지만 하루 15%의 미국 물동량을 실어 나른다고 말했다. 항만청이 3분의 2를 부담하고 연방·주정부가 나머지를 지원했다. 
 
 
지난 29일 노엘 하세가바(Noel Hacegaba) 미국 롱비치 항만청 부청장이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BPEX)에서 열린 '제13회 부산국제항만컨퍼런스(BIPC)' 지식교류 세션 화상을 통해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미국 롱비치 항만청 화상 캡쳐)
 
 
이 사업은 항만 인프라가 단일 도시가 아닌 국가적 과제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또 다른 상징적 프로젝트인 '미들하버 재개발'은 낡은 부두를 합쳐 연 330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를 처리하는 초대형 친환경 터미널로 변모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자동화 기술과 친환경 장비를 갖춘 터미널로 부상하면서 해당 항만은 지속가능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한 핵심 인프라가 된 것이다. 앞으로 10년간 롱비치 항만에는 32억달러를 인프라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핵심은 철도 확충이다. 
 
롱비치 철도 프로젝트는 18억달러 규모로 항만 내부에 미국 최대의 철도 야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연방정부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가 보조금을 지원하며, 민간 철도사도 연계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또 초대형 선박 입항을 위한 항로 준설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3억2000만달러를 투입하는 해당 사업은 연방정부와 공동 추진한다. 결국 항만 경쟁력은 단일 시설이 아니라 철도·항로·터미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종합적 네트워크에 달려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롱비치 항만은 2030년까지 모든 하역 장비, 2035년까지 트럭의 탄소 배출을 '제로화'할 계획이다. 주목할 점은 운영 중인 150기의 충전소로 두 배 더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전기 트럭과 전동 하역 장비(크레인, 야드트랙터 등)를 위한 EV 충전소로 친환경 장비 전환을 촉진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11일 부산 남구 신선대 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더 주목할 점은 항만이 국가 에너지 전략까지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단초로 항만 부지에 47억달러를 들여 미국 최대 규모의 풍력 터빈 조립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캘리포니아주의 2045년 해상풍력 25GW 목표 달성이 뒷받침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의 에너지 자립에도 기여할 수 있는 등 물류의 중심지가 에너지 안보의 거점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항만은 지역 경제의 엔진으로 불리지만 국가 전체의 성장 동력이기도 하다. 노엘 하세가바 부청장도 이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말은 롱비치 항만을 교량·철도·터미널 확충에서 친환경·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경제·환경·안보' 삼중 과제를 해결하는 공간으로 진화시킨다는 얘기다. 이에 비하면 한국 항만의 현실은 사실상 개도국에 불과하다. 단순히 항만 시설을 확충하는 것을 넘어 민관 협력, 다층적 재원 조달, 친환경·에너지 전략 결합을 넘어서야한다. 그래야 국가 경쟁력을 담보하는 핵심 자산으로 거듭날 수 있다. 
 
북극항로의 개척은 친환경 항만 인프라의 혁신이 결합될 때 완성된다. 한국 항만이 이 두 축을 동시에 붙잡을 수 있다면 단순한 물류 거점을 넘어 비로소 글로벌 해운 질서의 전략적 허브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26일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북극항로 자문위원회 위촉식 및 제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해수부)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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