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의 열쇠를 쥔 방위사업청이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면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갈등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사업자 선정 기준의 불투명성과 잇따른 조율 실패로 인해 방사청과 주요 조선사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해외 수주를 위한 ‘원팀’ 체제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특히 방위산업은 정부와 기업 간 긴밀한 협력이 필수인 만큼, 주무 기관의 불안정한 행보와 주요 조선사 간 갈등은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형 차기 이지스 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한화오션)
최근 들어 방사청과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간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방사청은 지난달 30일 HD현대중공업의 보안 감점 적용 기간을 올해 11월에서 2026년 12월까지 1년 이상 연장했습니다. 앞서 HD현대중공업은 KDDX 관련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1.8점의 보안 감점을 받은 바 있는데, 방사청은 당시 기소된 9명 중 1명의 판결 시점이 달라 두 사건을 별도로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 11월까지는 기존(1.8점) 보안 감점이 적용되고, 그 이후엔 2026년 12월까지 1.2점의 보안 감점이 적용됩니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경 대응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KDDX 사업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간 갈등으로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었습니다. KDDX 사업의 개념설계는 2012년 당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맡았고, 기본설계는 2020년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이 수행했습니다. 이후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로 이어져야 했지만,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둘러싼 두 조선사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일정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입니다. HD현대중공업은 기존 관례에 따라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수의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이 보안 감점을 받은 만큼 경쟁입찰로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당초 2024년에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계약이 이뤄졌어야 하지만, 방사청의 지연된 조율로 사업 추진이 사실상 표류하고 있는 셈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도 10월 방위사업기획관리분과위원회(분과위)와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따라 KDDX 사업자 선정이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K-방산의 ‘진흙탕 싸움’이 글로벌 시장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특히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함께 참여 중인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도 불안감이 번지고 있습니다. 해당 사업은 12척 건조 비용만 약 200억달러(약 28조원)에 달하며, 유지·보수(MRO)까지 포함하면 총 60조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로 평가됩니다. 현재 한국과 독일이 최종 후보로 압축된 가운데, 한국은 디젤 잠수함 기술력과 납기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조선사 간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대외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약 14조원 규모의 호주 호위함 사업에서도 한국은 일본·독일의 ‘원팀’ 전략에 밀려 고배를 마셨습니다. 호주 측 요구 사양을 충족하지 못한 점도 있었지만, KDDX 사업을 둘러싼 국내 경쟁이 해외 사업에도 이어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원팀’을 꾸리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석종건 방사청장은 “호주 수주 실패를 교훈 삼아 앞으로는 원팀을 구성해 우리 기업의 해외 함정 수주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호황을 맞고 있는 한국이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방사청이 K-방산의 호황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방산 4대 강국 도약’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가 방산 리더십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