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현대차의 러시아 시장 재진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이 다시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환매권 행사 시한도 두 달여 남짓 남은 상황이 됐기 때문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생산 공장 모습. (사진=현대차)
20일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재매입(바이백)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앞서 2023년 12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생산시설을 비롯한 러시아 사업 지분 전량을 1만루블(당시 환율 기준 약 14만원)에 처분하며 현지에서 손을 뗐습니다. 당시 계약서에는 특정 기한 내 시설을 되사올 수 있는 조건이 명시됐습니다. 재매입 시한이 올 연말까지인 만큼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임박했습니다.
러시아는 현대차가 손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무대입니다. 철수 직전까지 현대차와 기아를 합산한 점유율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과를 거뒀기 때문입니다. 전쟁 이전 러시아는 현대차그룹의 전략 거점이었으며, 해마다 수십만 대를 판매하며 꾸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설은 주력 생산기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현대차가 러-우 전쟁 종료 시 러시아 시장 재진출을 염두에 두고 현지 사업을 완전히 접지 않은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올해 현대차그룹이 러시아 연방 지식재산 서비스에 ‘현대(Hyundai) ix10’ 등 상표를 잇달아 등록했다고 보도했는데, 이러한 움직임도 시장 재진입 준비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수익성 차원에서도 러시아 시장 재진출이 필요합니다. 미국 관세정책 여파로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은 올 2분기 1조6000억원 감소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에 붙는 관세가 25%에서 15%로 낮아질 예정이지만, 한미FTA(자유무역협정)로 무관세 혜택을 누렸던 것과 비교하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복귀 결정이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침략 당사국인 러시아에 되돌아가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국제 여론의 질타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구권의 대러 경제 제재가 온전히 풀리지 않은 여건에서 조급한 복귀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유럽과 북미 등 핵심 시장의 부정적 반응도 감안해야 합니다. 소비자 보이콧이나 여론 악화 위험성도 존재합니다.
현대차 공백 기간 동안 중국 제조사들이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입니다. 복귀 시점이 늦춰질수록 경쟁 우위 회복이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시장 재진출 기회를 모색하고 있지만, 잘못된 판단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을 기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