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오세은 기자] 현대차가 도널드 트럼프 리스크의 양면성 속에서 경영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원화 약세로 인한 환율 상승이 미국 매출 증가의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한국산 수입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로 연 8.4조의 부담 등 복합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에 현대차는 미국 내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높여 관세 부과의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사진=현대차그룹)
1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3분기 영업이익이 5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까지 오르면서 미국 수출 매출을 원화로 환산할 때 자동으로 증가하는 구조가 형성됐습니다.
특히, 미국은 한국 자동차 수출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인 만큼,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영업이익이 2000억원에서 많게는 4000억원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또한 환율 상승은 수출 제품의 국제 가격 경쟁력을 강화합니다.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 같은 달러 가격으로도 더 높은 원화 수익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제품의 현지 시장 가격 인하로 이어져 판매 경쟁력 강화 및 시장 점유율 확대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합니다.
현대차는 환율 상승으로 인한 환차익을 마케팅 투자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 내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달러화 강세에서 비롯된 추가 수익으로 고객 유인 프로모션이나 브랜드 강화 활동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할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환율 상승 시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력 약화 속에서도 현대차의 마진율 방어가 가능해집니다. 고관세 정책으로 차량 가격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환율 상승으로 인한 추가 수익은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는 가격 조정의 완충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관세 25% 유지 시 연 8.4조 부담
다만, 원화 약세로 인한 환율 상승의 메리트가 고관세 정책 부담을 완전히 상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고율 관세를 유지할 경우, 현대차가 부담해야 할 연간 관세 비용이 8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반면, 관세율이 유럽연합(EU)과 일본에 적용되는 15%로 인하되면 약 3조원가량 절감이 가능해 업계에선 조속한 관세 인하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근로자 ‘메타프로’가 작업하는 모습. (사진=현대차그룹)
나이스신용평가의 ‘자동차 산업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대미 자동차 수출 관세율이 한국이 25%, EU·일본은 15%로 유지될 경우 현대차의 연간 관세 비용은 8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이는 토요타(6조2000억원), GM(7조원), 폭스바겐(4조6000억원)을 모두 웃도는 수준입니다.
이에 따라 현대차의 연간 영업이익률은 기존 9.7%에서 6.3%로 하락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습니다. 반면, 관세율이 15%로 낮아지면 관세 비용은 5조3000억원으로 줄고, 영업이익률은 7.5%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습니다.
보고서는 “현대차그룹은 우수한 수익성과 재무적 융통성을 바탕으로 관세 부담을 일정 수준 대응하는 것은 가능할 전망이나, 경쟁사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율을 기반으로 가격 인하 전략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경우 미국 시장 내 경쟁 구도가 변동될 위험이 상존한다”고 우려했습니다.
업계에선 내년 미국 자동차 시장이 둔화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커 관세 인하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올해는 관세 인상 우려로 소비자들이 구매를 서두르는 ‘반짝 효과’가 있었지만, 이 같은 수요가 내년엔 줄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으로 간신히 버텼던 미국 자동차 시장이 연말 이후 침체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높은 관세율이 해를 넘기는 등 장기화할수록 국내 완성차 업계의 비용 증가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완성차 업계도 가격 조정 압박이 커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25% 고율 관세 유지로 현대차그룹이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이 연 8조원에 달한다면, 이는 수익성뿐만 아니라 기업의 구조적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북미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배터리 및 부품 내재화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전경.(사진=현대차그룹)
미 생산 늘려 관세 영향 ‘최소화’
관세 부담을 감당하면서도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본격적인 전략 전환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조지아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능력을 20만대 증설해 총 50만대로 확대하고, 앨라배마 공장 등 기존 공장도 생산설비를 현대화하는 보완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메타플랜트에서 아이오닉 5를 생산해 시장에 선보였으며, 올해 3월 아이오닉 9 생산에 돌입했고 2026년에는 기아 모델과 하이브리드 차종도 추가 투입할 계획입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차종의 현지 생산을 다양화하면서 미국 시장의 수요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려는 것입니다.
현대차는 미국 판매용 차량의 생산 시설과 공급망을 현지로 집중시키는 전략을 추진 중입니다. 부품 조달부터 생산, 판매까지 전 단계를 현지화함으로써 관세의 영향을 줄이고 비용 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할 수 있는 전기로를 미국 현지에 건설해 철강 관세 부과와 현지 생태계 구축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기술 협업, 생산 확대, 유통 다변화 전략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북미 시장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방침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환율 메리트로 실적을 보전하되, 장기적으로는 현지 생산 확대와 공급망 현지화를 통해 고관세 시대에 대응하는 구조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표진수·오세은 기자 realwa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