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전달책'…국민참여재판에서도 '유죄'

입력 : 2025-11-07 오전 11:21:32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지난 10월 캄보디아에 거점을 두고 보이스피싱, 투자리딩 사기, 로맨스스캠 등 각종 사기 범죄를 벌이던 대규모 조직이 검거돼 국내로 송환됐습니다. 경찰은 범죄 조직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와 검거에 나서고 있지만 총책급의 핵심 조직원 검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수거책이나 전달책은 많이 검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범죄 피해금을 받아 다른 조직에게 전달하거나 대포통장 등으로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 청주지법은 보이스피싱 피해금 1억8000여만원을 전달한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A씨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를 받았습니다. 전달책 역할을 하면서 피해금이 1억원 이상인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는 주로 실형이 선고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4일 서울동부지법은 피해자 7명으로부터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계좌로 입금하거나 가상화폐로 환전해 코인을 보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B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B씨는 국민참여재판을 받았는데,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B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형량과 집행유예를 선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문정동 서울동부지방법원 모습.(사진=뉴스토마토)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의 신청으로 열리게 되는데 배심원은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 중 선정됩니다.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 선정 절차부터 시작되는데, 배심원 후보자를 대상으로 판사, 검사, 변호인이 질문을 해 사건을 공정하게 평결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선정된 배심원은 공판절차에 참여해 검사와 변호인의 주장을 듣고 증거조사, 검사와 변호인의 최종 변론 등 공판절차를 끝까지 지켜보게 됩니다.
 
변론이 종결되면 재판장이 사건의 쟁점 및 증거, 적용되는 법률, 판단의 원칙에 관해 설명합니다. 이후 배심원들은 평의실에 모여 지켜본 공판절차의 내용을 바탕으로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한 평의를 진행하고, 유죄 평결이 내려지면 재판부와 함께 피고인에게 부과할 적정한 형에 대해 토의합니다. 재판부는 결과를 참고해 판결하게 되는데 평결 결과에 기속이 되지는 않지만 판결을 선고하면서 배심원의 평결 결과를 피고인에게 고지해야 하고 평결 결과와 다른 판결을 선고할 때에는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B씨는 모바일 앱을 통해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중, 현금을 받아 코인으로 교환해 주는 장외 거래 전문 업체의 직원이라고 속인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취직 제안을 받았습니다. 보수는 거래 1건당 15만원 내지 30만원을 지급하고, 교통비도 전액 지원한다고 했습니다. B씨는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장외 코인거래가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판단하고 일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B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를 받고 전국을 돌며 피해자 7명을 만나 1억1000여만원을 받고 지시받은 계좌로 현금을 입금하거나 가상화폐로 환전해 보낸 후 200여만원의 보수를 받았고,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국민참여재판을 받게 된 겁니다.
 
검찰은 업무의 난이도에 비해 보수가 고액이고 취직이나 업무 지시 과정이 이례적인 사정 등을 볼 때, B씨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다는 정황을 조금이라도 인식하고서도 고액의 보수를 위해 외면한 것으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피고인에게 징역 3년6개월을 구형했습니다. 전달책의 경우 보통 보이스피싱에 가담한다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처벌받게 되는데 여러 정황을 바탕으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변호인은 전달책의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범죄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단순히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다는 고의가 없었다는 점을 주장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전달책과 같은 일을 통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B씨의 행위를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인이 초범이고 피해자 4명과 합의해 처벌불원서를 받고 나머지 3명에게는 공탁한 점을 고려한 결과로 보입니다.
 
정부는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일 내년 5월부터 신용카드·캐피털사 등도 대출을 취급할 때 본인확인 의무를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하면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이 아르바이트로 오인하고 시작하기 쉬운 전달책과 같은 역할의 구체적인 수행 방법에 대한 홍보는 부족해 보입니다.
 
보이스피싱은 예방이 중요하므로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전화나 문자를 받으면 꼭 관련 기관이나 전문가에게 확인해 스스로 피해를 방지해야 합니다. 또한 쉽게 큰돈을 버는 일은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유념해 범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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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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