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5000보 걸으면 인지 저하 늦춘다

무증상 알츠하이머에 긍정 효과 증명
하버드 연구팀, PET 영상 14년 추적

입력 : 2025-11-07 오전 10:23:23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은 기억력 저하와 인지기능 손상을 동반하는 퇴행성 뇌질환입니다. 이 병은 증상이 나타나기 수년 또는 수십 년 전부터 뇌 속에 아밀로이드 베타와 과인산화 상태의 타우 단백질(Tau protein)이 축적되면서 서서히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를 ‘전임상(Preclinical) 알츠하이머’ 단계라고 부릅니다. 이 단계에서 신체 활동의 개입이 이루어지면 이후 인지 저하나 치매로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 연구진 조사 결과, 걷기는 무증상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PET 영상·만보계로 연관성 분석
 
이번 주 초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된 논문 ‘임상 전 알츠하이머병의 조정 가능한 위험 요인으로서의 신체활동’(Physical Activity as a Modifiable Risk Factor in Preclinical Alzheimer’s Disease)은 무증상 단계에서 걷기 같은 신체활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데이터를 통해 실증적으로 제시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간 운동이나 신체활동이 인지 능력 및 치매 위험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는 많았지만, 이번 논문은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 영상으로 관찰한 뇌 속의 아밀로이드 베타 및 타우 단백질과 착용형 기기(만보계 등)로 측정한 보행 데이터를 이용하여 실제 인지저하 진행 정도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하버드 의대 신경학과의 웬디 야우(Wendy Yau) 박사 연구팀은 하버드대가 운영하는 ‘하버드 뇌 노화 연구( Harvard Aging Brain Study)’에 피실험자로 참가한 사람들의 데이터를 이용했습니다. 연구 대상은 50세에서 90세 사이의, 인지기능이 정상인 294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뇌 속의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수준을 이미 확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연구팀은 만보계로 측정한 이들의 걸음 수, 매년 진행된 인지 기능 검사, 그리고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을 살펴보는 PET 영상 자료를 최대 14년 동안 꾸준히 추적·관찰했습니다. 이런 설계 덕분에 ‘운동 → 뇌병리 변화 → 인지저하 완화’라는 가설을 보다 명확히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
 
신체 활동, 인지 저하 속도 완화
 
연구 결과 보행수 등 활동량이 더 높은 그룹에서 인지기능 저하의 속도가 느리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기저 아밀로이드 베타가 높은 실험 대상자들 사이에서 이 연관성이 더욱 뚜렷했습니다. 그러나 활동량이 많다고 해서 아밀로이드 베타의 축적 자체가 감소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신체활동이 활발한 사람일수록 뇌의 하측두 부위에서 타우 단백질이 덜 쌓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경향은 인지 기능이 더 오래 유지되는 것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규칙적인 운동이 뇌 속 단백질 변화를 늦추고 인지 저하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운동량이 늘수록 인지 저하가 늦춰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 효과는 일정 수준 이후에는 더 커지지 않았습니다. 하루 약 5000~7500걸음 정도에서 가장 뚜렷한 효과가 나타났으며, 그보다 많이 걸어도 추가적인 이득은 크지 않았습니다.
 
 
정상적인 뇌(왼쪽)와 알츠하이이머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의 뇌의 단면. (사진=위키피디아)
 
이전 연구들은 주로 신체활동 수준이 치매 위험이나 인지 저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 단계에서의 뇌 속 변화를 살펴봤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즉,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쌓이는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과정까지 분석해, 더 이른 시점에서 예방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운동, 가장 안전하고 쉬운 예방책
 
신체활동은 비용이 적게 들고 부작용이 거의 없는 건강 유지 방법입니다. 특히 고령사회에서는 약물치료와 함께 생활습관 개선이 뇌 건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걷기와 같은 간단한 신체활동이 인지기능 보호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아울러 알츠하이머병이 시작되기 전 단계에서 운동을 통해 뇌 속 변화가 진행되는 속도를 늦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즉, 신체활동이 단순히 건강에 좋다는 수준을 넘어, 뇌 속 단백질 변화가 인지기능 저하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번 연구는 운동과 알츠하이머병 진행 완화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주었지만, 이를 확실한 인과관계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신체활동량이 많은 사람에게 인지저하가 느리게 나타났다고 해서 ‘운동이 이런 결과를 직접 일으켰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년 이후 생활습관 개선이 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만은 분명합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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