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기자] 미국 상원이 9일(현지시간) 임시예산안(CR) 처리 차원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해제 동의안을 가결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40일째 이어져온 미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 사태도 종료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집권 여당인 공화당이 주도한 예산 마련 법안 패키지에 민주당 중도파가 동의하면서 셧다운 사태 정상화의 돌파구를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미 연방정부의 셧다운 사태가 이미 역대 최장기간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만만치 않습니다. 항공·여행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 활동의 '동맥'이 막히는 양상이 가시화되고, 소비심리 악화와 정부 지출 중단으로 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마이너스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워싱턴D.C.에서 바라본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내셔널 공항에 항공기들. 연방항공청(FAA)은 관제 인력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공항 40곳에서 운항 편수를 이달 14일까지 10% 감축하도록 지시했다. (사진=AFP 연합뉴스)
셧다운 40일째 "추수감사절까지 가면 역성장"
미 상원은 이날 임시예산안 처리를 막고 있던 필리버스터 해제 표결을 실시해 찬성 60표, 반대 40표로 통과시켰습니다. 공화당 53명에 민주당 중도파가 합류하면서 가결에 필요한 60표를 확보했습니다. 예산안 자체는 공화당이 과반을 점하고 있는 상·하원에서 단순 과반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통과될 것으로 보입니다. 상원과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산안에 서명하면 셧다운 사태는 종료됩니다.
미국의 셧다운 사태는 일단 정상화 수순을 밟게 됐지만, 이미 경제·사회 전반에 빠르게 퍼진 양극화 현상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힙니다. 단순히 극심한 정치적 대립을 넘어 일상생활 전반을 흔드는 위기로 번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실제 백악관은 셧다운이 이달 말 추수감사절·블랙프라이데이 시즌까지 이어질 경우 4분기 성장률이 역성장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9일(현지시간) <CBS 방송> 인터뷰에서 "추수감사절은 미국 소비가 가장 활발해지는 시기이자 연중 최대 쇼핑 이벤트가 맞물리는 기간"이라며 "이때 사람들이 여행 자체를 포기하게 되면 4분기 성장률이 실제로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기준 미국 셧다운은 40일째 지속 중입니다.
해싯 위원장은 특히 항공·여행 수요 감소가 단순 지연이 아니라 '소비 자체가 사라지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셧다운이 지속될 경우 주당 연율 기준으로 실질 GDP 성장률이 약 0.2%포인트씩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손실 폭도 누적된다는 뜻입니다.
해싯 위원장은 "셧다운이 몇 주 더 지속된다면 손실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에서 1.5% 손실을 봤다고 추산했다면서 "셧다운이 몇 주 더 지속된다면 손실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셧다운이 주당 연율 기준으로 실질 GDP 성장률을 약 0.2 %포인트씩 깎아낼 수 있다고 추산한 바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항공 관제 인력 무급근로→연쇄 소비 위축
실제로 항공 운항 차질은 이미 시작된 상태입니다. 연방항공청(FAA)은 관제 인력 공백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공항 40곳에서 운항 편수를 이달 14일까지 10% 감축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조만간 감축 폭이 최대 20%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습니다.
숀 더피 미국 교통부 장관도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추수감사절에 가족을 만나기 위한 여행 수요는 예년과 비슷하거나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실제 운항 가능한 항공편은 극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관제사 중 극소수만 출근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급여 지급이 재개되지 않는 한 공급 차질은 더 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공급망 차질과 운송 지연이 성수기와 겹칠 경우, 서비스업은 물론 제조·도소매 업종까지 재고·배송·영업 전략 전반에 압박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번 셧다운이 행정 중단을 넘어 실물경제 공급 측 충격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소비 양극화 심화…중·저소득층·고소득층 체감 경기 '온도차'
문제는 소비심리가 계층별로 상반된 흐름을 보이며 양극화가 심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미시간대는 11월 소비자심리지수 예비치를 50.3으로 집계했는데, 이는 3년 5개월 만의 최저 수준입니다. 연방정부 셧다운 장기화와 고물가 부담,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중·저 소득층을 중심으로 외식·여행·가구 등 재량 지출을 축소하고 필수 지출 비중을 늘리는 조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저가 가구·의류 등 중산층·저소득층 소비 비중이 높은 업체들의 3분기 매출이 부진했다"고 전했습니다.
반면 주식·자산 가격 상승의 수혜를 받은 고소득층 소비는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건스탠리와 도이체방크는 미국 상장사들의 3분기 실적 개선이 광범위해지면서 주식 비중이 큰 상위 소득 계층의 소비자 신뢰만 약 10% 상승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모건스탠리의 리사 샬렛 CIO는 "상위 40% 가구가 미국 전체 부의 85%를 보유하며 그중 3분의 2가 주식 자산"이라며 "증시 강세가 이어지는 한 고소득층 소비는 유지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연말 경기와 소비 흐름이 가계 전반의 체감과 다르게 '양극화된 회복'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셧다운이 과거와 달리 지속 기간이 길고, 여행 수요가 연중 집중되는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 파급력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크 잔디 무디스애널리틱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셧다운은 단순히 정부 부문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가계의 소비 여력을 약화시키고 기업 활동을 지연시키는 '수요·공급 동시 충격'으로 작용한다"며 "여행·외식처럼 시기를 놓치면 되살아나지 않는 소비는 '아예 사라지는 수요'로 남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뉴욕=김하늬 기통신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