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핵심 분야의 과감한 구조개혁을 주문한 것은 그만큼 잠재성장률 반등이 절실하다는 절박함으로 읽힙니다. 올해 사상 처음 1%대로 추락한 국내 잠재성장률은 14년 연속 하락세인 가운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전철을 밟고 있다고 할 정도로 성장률 추락이 가파른 상황입니다. 새 정부 출범 후 장기간 내수 부진의 터널을 뚫고 경제 회복 불씨가 켜진 상황에서 잠재성장률 반등은 현 정부의 필수 과제입니다.
이재명정부는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정책 포트폴리오에 구조개혁이라는 정공법을 선택했습니다. 6대 핵심 분야의 전면적인 구조개혁을 예고하면서 "고통이 따르지만 이겨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내년 한국 경제가 잠재성장률 달성을 넘어 잠재성장률 반등의 원년으로 삼고, 국정 동력이 강력한 임기 초 구조개혁에 속도를 낼 방침입니다.
사상 첫 1% 잠재성장률…구조개혁 통해 저성장 탈피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잠재성장률 반등'이라는 단어를 수차례 언급하면서 거듭 '구조개혁'을 주문했습니다. 실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 5% 안팎에서 올해 1.9%로 사상 처음 2%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더욱 비관적인 것은 오는 2030년대에는 0.7%, 2040년대에는 0.1%로 사실상 '제로 성장'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구조개혁을 주문하는 이 대통령의 절박함이 엿보이는 배경입니다.
취임 5개월에 접어든 이 대통령이 잠재성장률 반등의 터닝 포인트로 삼은 것은 구조개혁입니다. 사실 역대 정권에서 구조개혁은 언제나 거론돼왔지만, 집단적 저항 등에 부딪히면서 대다수 좌초되는 운명으로 끝났습니다. 이 대통령은 국정 동력이 강력한 임기 초반을 구조개혁 적기로 판단, 내년을 잠재성장률 반등의 원년으로 삼고 전면적인 개혁을 예고했습니다.
구조개혁의 첫 번째 영역은 공공부문입니다. 이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초 공공기관 통폐합을 여러 번 거론했습니다. 실제 지난 8월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는 "공공기관 통폐합을 대대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며 "너무 많아서 숫자를 못 세겠다"고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비서실장을 팀장으로 하는 공공기관 통폐합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공기업 체계 선진화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한국전력 산하 발전 공기업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주요 타깃으로, 대대적인 통폐합과 기능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공공기관 개혁의 명분 아래 힘없는 사람을 자르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되고, 불필요한 임원 자리를 정리하는 개혁을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습니다.
금융권 수익 구조 개선을 중심으로 한 금융 개혁도 대상입니다. 금융의 상당 부분이 인허가를 받아 국가 발권력을 대행하는 만큼, 공익 추구 의무를 져야 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금융권을 향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놀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달라"고 했고, 9월에는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담보 잡고 돈 빌려주고 이자 받는 전당포식 영업 말고 생산적 금융으로 대대적인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정부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 포용 금융 확대 등을 통해 성장과 회복을 균형 있게 뒷받침하는 금융정책을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이에 따라 금융권의 수익 구조 개선, 특히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제도 개선 등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집단적 저항이 큰 노동 개혁 역시 대표적인 개혁 대상입니다. 이 대통령은 노동계가 반대하는 고용 유연성 확보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습니다. 지난 7월에는 "고용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으니까 필요할 때 사람을 내보내고, 다른 사람을 뽑기 쉽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 구조상 글로벌 시장 변화에 신속 적응하려면 고용 형태가 유연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때문에 민간에서는 고용 유연성 확보 방안이 논의 테이블에 오를지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입니다.
김 대변인은 "무엇보다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 강압적으로 추진한 지난 정부의 노동 개혁과 달리 이재명정부는 소통과 상생의 노사관계 구축을 통해 노동이 존중되는 진짜 성장을 실현해 나가겠다"며 "개혁은 필연적으로 갈등이 수반되므로 국민이 공감하는 만큼 추진할 수 있다는 원칙하에 개혁 과정 전반에 대한 국민 참여를 보장하고 수기 과정을 최대한 공개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연금·교육·규제 개혁도 대대적 손질…성과 창출 주목
연금 개혁도 타깃 대상입니다. 연금 개혁과 관련해서는 지난 3월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동시에 올리는 모수 개혁안이 18년 만에 국회에서 통과된 만큼, 구조개혁을 위한 세부 의제 조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과제로는 국민연금·기초연금 구조조정, 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이 꼽히는 가운데, 전임 정권에서 동력을 잃은 연금 개혁이 현 정부에서 속도를 낼지가 관건입니다. 김 대변인은 "연금 개혁은 장기적으로 세심하고 신중히 준비해야 할 과제인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구체적 개혁안을 논의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되, 다층 소득 보장 체계 구축을 통해 노후소득 보장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추진 방향들이 제시됐다"고 했습니다.
교육 개혁은 지역 국립대의 인프라를 확대해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달성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또 국가 책임 공교육 확대로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습니다. 앞서 교육 분야의 중점 전략 국정 과제로는 지역 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 인재 양성, 인공지능(AI) 디지털 시대 미래 인재 양성, 시민교육 강화로 전인적 역량 함양,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공교육 강화, 학교 자치와 교육 거버넌스 혁신 등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각종 규제 역시 개혁 대상입니다. 역대 정권에서 규제 개혁은 꾸준히 추진돼왔지만, 이해관계 충돌과 부처 간 칸막이, 개인정보·노동·환경 등 복잡하게 얽힌 거미줄 규제 해소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제1차 핵심 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핵심 규제의 합리화 없이는 신산업 성장이 어렵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분야별·목표별 세밀한 규제 개혁안을 만들어 신기술에는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고, 생명·안전 분야에는 적정 수준의 규제를 유지하는 등 환경 변화에 맞춰 합리적인 규제 개혁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