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 맑은 물을 좋아하는 호사비오리

입력 : 2025-11-24 오전 11:23:29
호사비오리 수컷이 북한강 상류에서 수면을 박차며 날아오르고 있다.
 
매년 가을이면 한강 상류, 강원도 춘천 의암댐에서 강촌까지의 구간에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손님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호사비오리(Chinese Merganser)입니다. 전 세계에 약 4000여마리만 남아 있는 멸종위기종이며, 한국을 찾는 개체는 모두 합쳐도 약 100마리 안팎에 불과합니다. 
 
호사비오리는 잠수성 오리류로 몸길이는 약 57cm 정도입니다. 길게 뻗은 댕기와 옆구리의 뚜렷한 비늘 무늬가 특징이며, 검은 눈과 노란 점이 있는 붉은 부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컷은 머리와 목이 검지만 빛을 받으면 짙은 초록색 광택이 나고, 뒤쪽으로 길게 뻗은 댕기가 있어 암컷과 쉽게 구별됩니다. 암컷은 연한 갈색 머리에 짧은 댕기가 있으며, 등은 회색을 띱니다. 
 
호사비오리는 물이 맑고 흐름이 빠른 중상류 하천을 선호하며, 작은 물고기나 양서류를 먹는 육식성입니다. 나무 구멍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번식지 주변에는 오래된 큰 나무가 필요합니다. 주요 번식지는 러시아 연해주의 비킨강과 이만강, 중국 헤이룽장성의 샤오싱안링, 백두산 지역이며 겨울은 중국 남부와 한반도에서 납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전 세계 개체수 약 2400~4500마리의 ‘위기(EN, Endangered)’ 등급으로 평가하고 있고, 한국은 국가자연유산(천연기념물 448호) 및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2016년 멸종위기종으로 등록했습니다. 
 
1990년대 초 남아프리카의 한 수집가가 러시아 조류학자 세르게이 스미렌스키(Sergei Smirenski) 박사에게 호사비오리 한 쌍을 채집해달라며 20만달러를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르 지역 오지에서 생태학교를 운영하던 그에게 큰 유혹이었지만, 스미렌스키 박사는 “호사비오리는 돈보다 가치 있는 자연유산”이라며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개체수가 10만마리 이상으로 회복되면 다시 생각하겠다”는 말에는 자연을 대하는 학자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호사비오리 수컷이 강물에 내리려고 꼬리깃과 날개깃을 펼치고 있다. 
 
한반도에서 호사비오리의 초기 기록은 매우 희귀했습니다. 1927년 일본인 타카씨가 경기도에서 포획한 표본과, 1912년 함경북도에서 미국인 앤드류씨가 수집한 유조 한 쌍이 미국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된 사례가 거의 유일했습니다. 오랫동안 생태가 밝혀지지 않아 조류도감에 사진조차 실리지 못했고 천연기념물 지정에서도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강원도 철원·김화·춘천, 경남 진주, 충북 청원 등지에서 겨울을 나는 개체가 꾸준히 관찰되자 2005년 3월 천연기념물 제448호로 새롭게 지정되었습니다. 
 
호사비오리의 생태를 알고 싶어 1997년과 2006년 러시아 우수리 지역 이만강과 중국 샤오싱안링의 량쉐이(凉水) 자연보호구를 찾았습니다. 이만강 상류를 보트로 오르내리며 약 50~60마리의 호사비오리가 가족 단위로 날아다니는 모습을 멀리서 기록했습니다. 반면 량쉐이 자연보호구는 외국인 출입이 제한된 연구 지역이라 가까이 접근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비록 둥지를 직접 찾지는 못했지만 두 지역의 자연환경은 한국 월동지와 매우 흡사했습니다. 강폭이 넓지 않고 강가에는 울창한 숲이 인접해 있으며, 물은 맑고 차가웠습니다. 
 
호사비오리는 나무 구멍에 둥지를 튼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번식 둥지를 찾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27년 전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난 러시아 학자 세르게이 서막(Sergei Surmach) 박사 역시 “호사비오리는 비오리와는 달리 나무 구멍에 둥지를 틀지만 개체수가 워낙 적어 관찰 둥지를 찾기가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류사진가 박웅씨가 2010년부터 6년 동안 중국 이도백하의 백두산 지류에서 번식 생태를 꾸준히 기록했습니다. 그의 저서 『백두산 새 관찰기』(2017, 글항아리)에는 지상 8m 높이 자작나무 구멍에서 7~8마리의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 지상 풀숲으로 낙하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어린 새들이 모두 안전하게 떨어지면 어미는 소리로 이들을 모아 강으로 이끌며, 어린 새들은 헤엄치며 어미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라 배우기 시작합니다. 
 
최근 들어 탐조 인구가 늘면서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호사비오리의 겨울철 생태도 점차 밝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월동지가 확인되고 개체수 조사도 꾸준히 이루어지며, 민간 차원의 보호 활동 역시 활발합니다. 하지만 호사비오리가 좋아하는 맑고 깨끗한 물이 줄어드는 현실은 여전히 큰 과제입니다. 개체수가 좀처럼 늘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하천 환경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호사비오리는 강의 수질과 주변 환경에 매우 민감한 종이기 때문입니다. 강이 살아 있어야 호사비오리가 찾아오기에, 이들은 하천 생태계의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종입니다. 호사비오리의 번식지와 월동지의 자연환경이 더욱 좋아져, 앞으로도 한반도의 여러 강에서 오래도록 머물며 관찰되기를 기대합니다. 

글,사진=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이지유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