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연말 대출절벽…선착순 이거 맞아?

입력 : 2025-11-24 오후 2:01:03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연말이 다가오면서 주요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신규 취급이 사실상 멈추는 '대출 절벽'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습니다. 대출 총량제 때문에 규정 내 한도를 소진한 은행들이 빗장을 걸고 있어서인데요. 대출이 사실상 선착순이라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연말마다 발목잡는 총량 규제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대출 절벽이 현실화한 가장 큰 이유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꼽힙니다. 금융당국은 연초 은행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부여했고 주요 시중은행들의 증가 속도는 이미 이 목표치를 넘어섰습니다.
 
올해 4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지난 20일 기준 약 7조8953억원으로, 금융당국에 제출한 올해 연간 목표(5조9493억원)를 약 32.7% 웃돈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로 인해 은행들은 사실상 연말 신규 취급을 제한하거나 중단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연간 총량을 넘기면 내년도 배정분이 줄어들어 장기적으로 더 큰 부담이 된다"며 "특히 주담대는 규제 민감도가 높아 더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11~12월에 신청하는 실수요자에게 죄송하지만 현실적으로 은행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좁다"고 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은행 대출 창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해외엔 없는 '연말 대출 절벽'
 
문제는 이러한 '연말 대출 절벽'이 한국 고유의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연간 총량을 숫자로 묶기보다는 자본비율과 건전성 규제, 특정 리스크 요인에 대한 부문별 관리로 간접적 조절을 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은행이 충분한 자본을 확보하도록 요구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설계하고 있으며 필요 시 특정 고위험 부문에만 완화·강화를 조절합니다. 일본 역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고위험 사업자 대출 등 취약 구간을 집중 관리하는 방식을 씁니다. 총량 자체를 숫자로 막아버리는 한국의 방식은 국제적으로도 드물다는 지적이 금융권 안팎에서 제기됩니다.
 
총량 규제가 연말마다 금융 접근성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지적 자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특정 은행의 문이 닫히고 그 여파가 다른 은행으로 쏠리면서 창구마다 차주들이 가능한 은행을 찾아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됩니다. 높은 금리로 인해 이미 대출 문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접수 기회조차 사라지는 현실은 실수요자에게 이중 부담입니다. 
 
시중에선 연초까지 이런 불편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특히 은행들이 1월 중순 이후까지 대출상품을 보수적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금융당국이 발표할 내년도 가계대출 증가율 가이던스가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비슷한 패턴은 내년에도 반복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총량 규제를 유지하더라도 실수요자 대출을 별도로 묶어 관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생애 최초 구입자, 실거주 목적 주담대, 전세보증금 반환 등 필수 수요를 총량에서 별도로 구분하거나 은행 공동 계정을 마련해 특정 은행의 한도 조기 소진을 완화하는 방식 등이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실제 영국·핀란드 등 일부 국가에서는 주담대를 목적별로 나눠 규제 강도를 조절하는 형태로 실수요자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자본 중심 규제나 리스크 기반 감독이 확대되면 은행 입장에서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 시장 혼란이 줄어들 것이라는 진단도 나옵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대출 총량을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나라에 가깝다"며 "총량 규제는 연말만 되면 은행들이 규제 한도 초과를 피하기 위해 대출을 급하게 축소하게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은행은 총량 목표를 넘기면 금융당국의 제재 위험이 크기 때문에 대출을 축소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리스크 관리가 된다"며 "규제와 회피가 반복되면서 시장 왜곡이 심화되고, 이 과정에서 정상적인 실수요자가 피해를 본다"고 짚었습니다.
 
김 교수는 "한국의 대출 절벽은 경제적 요인이 아니라 규제 설계의 문제에서 비롯된 반복적인 현상"이라며 "총량 중심 규제에서 벗어나 건전성 중심·정밀규제 중심 체계로 전환해야 실수요자 피해를 줄이고 금융시장 안정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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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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