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국내 주요 그룹들이 연말 임원인사를 잇달아 단행하며 인적쇄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고환율과 트럼프발 관세 조치, 중국 저가 공세 등 대내외 불확실성 높아진 가운데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트렌드와 경쟁 구도가 급변함에 따라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방점을 찍은 모습입니다. 삼성은 ‘안정’, SK와 롯데는 ‘변화’를 내세우는 등 그룹마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 키워드는 ‘현장형 기술인재와 젊은 리더십’으로 압축됩니다. 특히 1980년대생 젊은 임원을 과감히 중용하는 등 조직 내 세대교체와 다양성 확보에 나섰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서울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을지로 마천루 전경. (사진=뉴시스)울
별들 이동…경쟁력 강화 ‘방점’
2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번주 보직인사를 마무리하고 내년도 사업 연착륙 논의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1일 4명 규모의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삼성전자는 반도체(DS) 부문의 전영현 부회장과 모바일·가전(DX) 부문의 노태문 사장으로 이뤄진 2인 대표 체제 구축 아래 반도체 사업과 스마트폰 사업 경쟁력 강화와 경영 안정에 힘을 실었습니다.
기술 리더십 강화 기조도 뚜렷했습니다.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였던 윤장현 부사장이 DX부문 CTO 사장 겸 삼성리서치(SR)장으로 승진하고 글로벌 석학인 박홍근 하버드 교수를 SAIT(삼성종합기술원)원장으로 위촉하는 등 ‘기술·소프트웨어 인재’를 전면에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부사장 이하 임원 인사 또한 AI·로봇·반도체 분야 인재를 전면에 배치하고 30대 상무, 40대 부사장 등 젊은 리더도 대거 발탁했습니다. 올해 부사장 이하 임원 승진자는 161명으로 5년 만에 확대됐는데, 신기술 분야 우수 인재의 등판이 두드러졌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1일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전영현 부회장, 노태문 사장, 윤장현 사장, 박홍근 사장.(왼쪽부터)(사진=삼성전자)
연공서열에 상관없이 미래 핵심 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낸 인재들을 과감하게 승진시켜 세대교체를 지속한다는 게 삼성전자 측의 설명입니다. 실제 삼성은 1968년생으로 사장단 중에서도 비교적 젊은 편인 노 사장을 대표이사로 기용한데 이어 39세의 김철민 상무와 이강욱 상무가 임원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또 1981년생인 구자천 부사장이 사업지원실 M&A팀에 투입되고 이병현 부사장(D램 공정 전문가), 이윤수 부사장(데이터 인텔리전스), 최고은 상무(로봇플랫폼) 등 AI와 로봇 분야의 R&D 인력이 대거 승진했습니다.
순혈주의 문화도 옅어졌습니다. 엔비디아 출신의 권정현 부사장,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의 권혁우 부사장, DL E&C 출신의 김정헌 부사장, LG전자 출신인 최항석 부사장 등이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도 현장을 잘 아는 기술 리더를 중용하자는 이재용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됩니다.
이형희 부회장, 강동수 SK사장, 정재헌 SKT 사장, 김정규 SK스퀘어 사장.(왼쪽부터).(사진=SK)
실무형 인사…80년대생 임원
국내 5대 그룹 중 가장 먼저 인사를 실시한 SK는 지난달 현장 실무 경험과 R&D 역량 등 문제해결 능력을 중심으로 경영진을 발탁했습니다. AI와 배터리 등 핵심 사업의 속도감 있는 리밸런싱(구조 재편)을 위해 진용을 짠 것입니다.
해킹여파로 몸살을 앓았던 SK텔레콤에는 법조인 출신 정재헌 최고거버넌스책임자(CGO)가 발탁됐으며 지주에서는 재무·사업개발 전문가인 강동수 PM부문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장용호 대표이사 사장과 합을 맞추게 됩니다.
차세대 리더 발탁도 눈길을 끕니다. 최태원 SK회장의 비서실장으로는 1980년생인 류병훈 SK하이닉스 미래전략 담당이 내정됐고 이종수(1971년) SK이노베이션 E&S 사장과 김정규(1976년) SK스퀘어 사장, 김완종(1973년) SK(주) AX 사장 등 1970년대생 사장도 5명 배출됐기 때문입니다.
SK는 이르면 내달 초 부사장 이하 임원 인사를 발표할 예정으로 후속 인사에도 현장과 실행 중심의 인재 중용이 예상됩니다.
LG전자가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류재철 LG전자 신임CEO, 이재성 사장, 은석현 사장, 백승태 부사장.(왼쪽부터) (사진=LG전자)
LG에서는 AI·바이오·클린테크 등 미래 성장축으로 제시한 ‘ABC’ 분야 인재 중심으로 인사를 꾀했습니다. 특히 장건 법무·준법지원팀장, 장승세 화학팀장, 정정욱 홍보·브랜드팀장이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와 미래 전략 설계를 주도할 리더십을 강화했습니다.
LG전자에서는 수장이 교체됐습니다. 기존 조주완 사장은 세대교체를 위해 용퇴하며 HS사업본부장 류재철 사장이 신임 CEO로 선임됐습니다. 총 34명의 승진인사에서는 은석현 VS사업본부장, 이재성 ES사업본부장이 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특히 LG전자는 기존 4개 사업본부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며 선택과 집중이 가능한 조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한편 비상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롯데지주는 부회장단 4명을 전원 퇴진시키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신성장 동력 확보를 통한 그룹 분위기 반전 및 쇄신이 절실한 만큼 과감한 인적 쇄신을 꾀한 것입니다. 특히 그룹 계열사 62곳 대표 가운데 20명이 한꺼번에 교체됐는데, 성과기반 인사를 통해 본원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밖에 현대차그룹은 이르면 12월 초 사장단 인사를 실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특히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가 큰 만큼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 전환 가속화’에 방점을 두고 안정 속 쇄신을 꾀할 전망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올해 실적은 좋았지만, AI를 중심으로 변화가 컸고 경영환경의 불확실성도 여전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쪽으로 인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룹마다 세부적으로 보면 전략이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성과와 세대 교체, 기술 리더십 이렇게 3개의 축을 중심으로 반도체나 AI, 로봇과 같이 미래기술에 대한 전문가를 중용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