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위 쿠데타 1년)재계 휩쓴 ‘긴급소집의 밤’…회복 ‘진행형’

반도체 랠리 돌아온 외인…관세 협상 타결
K자형 회복에 산업 양극화·고환율 등 과제

입력 : 2025-12-02 오후 4:02:39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비상계엄은 산업계에도 심리적 상흔을 남겼습니다. SK, 현대자동차, LG, HD현대 등 국내 주요 그룹들은 계엄 선포 직후 ‘위기관리’ 모드에 돌입해 긴급 사장단 회의를 열어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극도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비록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됐지만, 코스피는 4거래일 연속 급락하며 시가총액 144조원이 증발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사흘 만에 1조원 넘는 순매도로 ‘셀(Sell) 코리아’ 행렬에 가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출범한 이재명정부는 민생 지원 드라이브와 함께 관세 협상 타결, 세일즈 외교 등 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아울러 지난 1년간 정치적 리스크와 리더십 공백 속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미중 무역 갈등의 파고를 겪었던 기업들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을 등에 업고 체력 회복에 나선 모습입니다.
 
서울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을지로 마천루 전경. (사진=뉴시스)
 
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전거래일보다 2.58% 오른 10만34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이는 비상계엄이 터진 직후인 지난해 12월4일(5만3100원)에 견줘 94.7% 오른 수준입니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 2위인 SK하이닉스의 주가는 16만8000원에서 55만8000원으로 232% 뛰었고 시총 3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38만9000원에서 6.7% 오른 41만5000원으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정권 교체가 이어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도 일정 부분 해소됐습니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랠리가 이어지면서 코스피 지수는 4200선을 돌파했으며, 올해 5월부터 6개월간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1조원(누적 기준)을 순매수하면서 초기 이탈 규모를 상쇄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작년 12월3일 저녁 자리를 하다가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일부 기업은 재택 근무를 하기도 했고, 예정된 행사가 취소되기도 했다”며 “(1년을 돌아보니) 신인도 하락이나 우려했던 부분에 대해선 많이 완화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신인도 하락 완화…관세 협상 일단락
 
정치 리스크에 이어 한국 경제를 짓눌렀던 트럼프 행정부발 관세 폭탄도 일단락됐습니다. 당초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완성차·부품업계는 수익성 훼손과 투자 차질을 우려해야 했습니다.
 
분수령은 지난 10월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였습니다. 한·미 양국이 자동차 등 핵심 품목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그 대가로 2000억달러 현금 투자와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에너지 협력 투자를 포함한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를 마련하는 데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이어 미국 상무부가 11월1일자로 관세 인하를 소급 적용하겠다고 공식 확인하면서,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업체와 국내 부품사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게 됐습니다. 
 
반도체 부문에서도 최혜국 대우가 유지되면서, 한국산 메모리·파운드리 제품이 관세 측면에서 대만·일본과 동등한 조건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미 관세 협상 세부 합의 내용이 담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와 관련해 “다른 주요 경쟁국들이랑 경쟁하는 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불리하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점에서 긍정적으로 정부가 많이 노력을 해준 것 같다”고 언급했습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내수·비반도체 기업은 침체
 
다만 정책 표류와 양극화는 산업계의 발목을 여전히 붙잡는 요인입니다. 반도체 기업 보조금 등 국가의 직접 재정 지원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의 경우 지난해 6월 발의된 이후 여야 이견으로 1년 넘게 처리되지 못했고, 산업 구조적으로는 양극화가 나타났습니다.
 
반도체 호황이 삼성과 SK의 실적과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내수와 비반도체 부문 기업들은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K자형 회복’이 뚜렷해졌습니다. 실제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11월 기업경기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전산업 기업심리지수(CBSI)는 92.1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계엄 이전인 지난해 10월(92.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계엄 사태 이전으로 회복됐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극심한 양극화가 드러납니다. 제조업 실적은 전자·영상·통신장비와 금속가공, 석유정제·코크스 업종을 중심으로 개선됐는데, 이는 모두 AI 메모리 가격 상승, 조선사 발전소 수주 증가 등 대기업과 수출 중심 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업 규모와 형태별로도 희비가 갈렸습니다. 대기업은 95.8로 전월 대비 0.7포인트 올랐지만, 중소기업은 88.7로 0.5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수출기업의 경우 98.3으로 1.5포인트 상승한 반면 내수기업은 89.6으로 0.7포인트 빠졌습니다.
 
비상계엄 충격과 한미 통상 합의에 따른 불확실성은 가셨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한 모습입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후반에서 고착하면서 물가 불안이 고개를 들고, 기업의 부담도 커지는 실정입니다. 한국은행은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1.0%, 1.8%로 소폭 높여 잡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수출·내수 등 실물경제의 회복세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만 놓고 봐도 계엄 당시보다 더 높은 불안이 야기되는 상황으로 거시적으로 하방 리스크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며 “수출 경쟁력을 강화해 원화를 안정시키고, 기업이 활동하기 좋도록 투자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해외자본의 국내 투자를 유도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백아란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