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기업을 하나의 생태계로 비유하면 경제 안에서 끊임없이 자라고 때론 쓰러지는 나무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한민국의 기업 환경은 경제라는 숲에서 자연스럽게 순화하지 못하고 생태계의 역동성마저 흔들리는 처지로 내몰린 지 오래입니다.
생장해야 할 나무는 제자리에서 더 자라지 못하고 높이 오르던 나무는 다시 낮은 자리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기업의 진입률과 퇴출률이 동시에 떨어지는 추풍낙엽과도 같습니다.
물이 돌지 않으면 썩듯, 기업 생태계의 움직임이 멈추면 활력을 잃습니다. '성장'이라는 단어를 부르짖기만 해도 목표에 도약했던 고도 성장기의 사다리는 오래전부터 삐걱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밟고 올라 또 밟고 밞다 보니 어떤 계단은 부서져 있고 어떤 계단은 아래로 기울어져 있는 데도 오롯이 올랐던 '성장 사다리'. 기업이 위로 향할 수 없는 구조라면 그 책임을 오롯이 기업에게 돌려야 할까요. 아니면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 성장의 허상을 딛고 서서 무한정 버티기만 해야 할까요.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직장인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나온 한국 경제를 돌이켜보면 우린 사다리를 꾸밀 새로운 페인트로 덧칠하고 몇 개의 계단을 떼어내 덧대는 땜질식 사다리만 바라봤을지 모릅니다. '진짜 구조개혁'이 아닌 반복된 관성의 정책이죠.
숲의 미래는 나무가 아닌 그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토양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요. 하지만 경제의 숲은 썩고 있습니다. 불어 오는 바람에 말라버린 가지는 꺾이고 꺾인 가지에 부목을 덧대 버티고 있는 처지죠.
새로운 생명은 이전보다 적게 움트고 있는 한국 경제의 숲. 이 불편한 침묵은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용의 80%'를 담당하고 있는 경제 핵심축인 중소기업은 단순한 후퇴가 아닌 기업 생태계가 더 이상 건강하게 순환하지 못하는 신호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되돌아온 기업은 무려 574개.
누군가는 단순한 시장 정리의 결과라 말하겠지만 한 기업이 내려앉기 전까지 겪는 고통과 선택, 그리고 몸살은 수많은 고통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국내 경제의 핵심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상당수는 낮은 수익성과 열악한 근무 환경, 기술 개발 역량 부족 등으로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습니다. 청년층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도 지속되면서 인력 수급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죠.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네거리에서 직장인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소기업의 가장 큰 경영 애로로 인건비 증가(47.1%), 내수 부진(46.3%), 인력 부족(33.6%)이 꼽힌 배경을 보면 자금 압박과 생산성 저하라는 이중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정책자금 지원, 기술 연구개발(R&D) 지원, 인력 매칭 프로그램 등 다양한 지원책을 쏟아왔지만 현장 실효성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양적 확대에 앞서 질적 보완책을 위한 개선책이 절실해지고 있는 겁니다.
정부도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가 국가 경제의 지속 성장을 좌우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손을 보태고 환경을 바꿔야 비로소 다시 자랄 수 있습니다.
성장 사다리 전체를 다시 세우는 등 진짜 구조를 고치는 소리는 기업의 꿈, 구성원의 희망, 그리고 국가 경제의 미래가 함께하는 소리일 것입니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한 직장인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