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미국과 중국 정부의 반도체 공방이 심해지면서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미국이 최근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H200의 중국 판매를 허용하자 중국 정부가 사용 규제 검토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중국 기업들은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AI 성능 고도화를 위해선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미중간 반도체 공방 심화에 따라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추이를 면밀히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국기가 그려진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1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H200 중국 수출 허용 발표 이후, 반응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중국 규제 당국은 엔비디아의 H200 칩 사용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국 기업이 H200 구매 의사를 밝힐 경우, 중국산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상세히 보고해야 하며, 공공부문에서는 구매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이 거론됩니다.
반면 중국 빅테크들은 H200 물량 확보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앞서 10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은 중국 AI 기업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가 최근 엔비디아의 H200 칩 구매를 문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소식통은 이들이 “베이징 규제 당국이 승인할 경우 H200을 대량 주문할 의향이 있다”면서도 엔비디아가 공급할 수 있을지 우려하며 명확한 설명을 요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중국 딥시크는 중국으로 수출이 금지된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 ‘블랙웰’을 제3국을 경유하는 우회 조달망을 통해 밀반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남아시아 내 비중국계 데이터센터를 통해 블랙웰 칩을 들여온 뒤, 이를 부품 단위로 해체해 중국으로 들여왔다는 겁니다.
엔비디아는 밀반입 사례 등에 대처하기 위해 칩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습니다. 이는 GPU가 엔비디아의 서버와 통신할 때 발생하는 네트워크 지연과 메타데이터를 분석해 GPU 설치 지역을 파악하는 구조입니다. 해당 기능이 활성화되면 중국의 칩 밀반입도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 기조에도 현장에서 엔비디아 칩 수요가 큰 것은 최적화 면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구축한 AI 모델이 엔비디아의 칩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화웨이 등 중국산 칩을 사용하면 코드를 재작성하는 등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된다는 겁니다. 또 화웨이의 ‘어센드’ 등 중국 칩 성능이 많이 향상됐지만, 아직은 성능과 에너지 효율뿐 아니라 유지·관리 측면에서도 엔비디아 제품이 우세하다는 게 중론입니다.
다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이달 초 “중국이 H200을 구매할지 전혀 감이 안 온다”고 토로한 것처럼, 실제 시장 수요는 불투명해 보입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을 공급하는 국내 반도체 업계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미국이 중국과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일 것”이라면서도 “중국 기업들이 정부의 자립 기조에 반하면서 칩을 구매할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