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고려아연이 미국 제련소 추진 과정에서 회사 지분 10%를 미국 정부와 세우는 합작법인(JV)에 넘기기로 한 가운데, MBK파트너스·영풍이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이 이르면 22일 나올 전망입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사진=고려아연)
법원이 어떤 판결을 하느냐에 따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새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JV에 고려아연 지분 10%가 넘어가면 최윤범 회장 측 의결권 기준 지분은 우호 지분을 포함해 최대 45.5%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돼 MBK·영풍 측 지분을 넘어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미 테네시주에 약 11조원을 투자해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면서 ‘크루서블 JV’를 설립했고 이 JV에 고려아연 지분 10%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넘기기로 했습니다.
크루서블 JV는 미국 정부(전쟁부·상무부)가 최대주주(40%)로 참여하고, 고려아연은 10%로 참여합니다. 나머지 50%도 미국 내 전략적 투자자가 참여하기 때문에 미국 측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일 수 밖에 없습니다.
탈중국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해 제련소 건설을 적극 추진하는 미국 정부 성격으로 볼 때 JV 지분 10%는 현 경영진인 최윤범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는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의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한 최 회장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등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추진됐습니다.
지난 10월 말 경주 한미 정상회담을 수행하며 방한한 러트닉 장관은 최 회장을 다시 만나 ‘최대한 빨리, 많은 물량’을 요구하며 제련소 추진을 위한 행정·금융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고려아연이 오는 26일 유상증자 대금을 납입하고 220만9716주를 신주로 발행하면 의결권 주식 기준으로 MBK·영풍 측 지분은 43.42%가 되고, 최 회장 측 지분은 18.76%로 올라갑니다.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한화(8.15%)와 신설 JV(11.21%), LG화학(1.99%) 등에 국민연금(5.08%)까지 합하면 최 회장 측 지분은 총 45.53%로, MBK·영풍 측 지분(43.42%)을 넘어서게 됩니다.
국민연금을 최 회장 우호 지분으로 분류하기 어렵지만, 국민연금은 ‘홈플러스 사태’ 등 영향으로 MBK의 기업 인수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올해 3월 주총에서도 핵심 안건에서 최 회장 손을 들어준 바 있습니다.
내년 3월 주총에서 이사회 추가 진입을 노리는 MBK·영풍 입장에서는 JV에 대한 유상증자로 애초 유리하다고 여겨졌던 표 대결 구도가 뒤집히는 셈입니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현재 최 회장 측 11명, MBK·영풍 측 4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는 올해 3월 주총에서 MBK·영풍 측이 신규 이사 3명을 진입시킨 데 따른 것입니다.
지난 주총에서 고려아연은 MBK·영풍 측의 이사회 장악을 막기 위해 이사회 최대 정원을 19명까지 늘린 바 있습니다. 최 회장 측 일부 이사들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신규 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내년 주총 이후 이사회 구도는 9대 6이나 8대 7 정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유증을 통해 JV로 넘어가는 지분(의결권 기준 11.21%)이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활용되면 이 같은 이사 수 격차는 MBK·영풍 측 기대만큼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9일 열린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금지 가처분 심문기일에서 양측 주장을 듣고 고려아연 측에 미국 정부가 제련소 지분을 원했다는 주장에 대한 석명자료를 이날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하고, 이날 심문을 종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유상증자 대금 납입기일을 오는 26일로 정한 만큼, 그 전에 결정을 내리겠다는 취지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22일께 가처분 신청 관련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법원이 고려아연 측 석명을 받아들여 가처분을 기각하는 경우 미 제련소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탈 전망입니다.
내년에 부지 조성을 시작해 2029년부터 단계적 상업 가동에 들어간다는 것이 고려아연의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최 회장 측은 내년 3월 주총에서 MBK·영풍 측의 이사회 진입 공세에 맞서 이사 자리를 1자리 이상 더 지켜내면서 경영권 분쟁에서 유리한 구도를 이어가는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
반면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하면, 이 같은 최 회장 측 방어 전략에 차질이 생깁니다. 내년 3월 주총의 기준일이 12월31일인 만큼, 26일에 유증 대금 납입이 이뤄지지 않고 JV 설립이 내년으로 미뤄지면 JV에 배정되는 신주의 효력은 내년 3월 주총에는 발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 MBK·영풍 측과 최 회장 측 지분은 약 48.9%대 32.9∼38.6% 수준으로 크게 벌어질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 같은 구도로 주총이 치러지면 이사회 구도가 현재 최 회장 측 11명 대 MBK·영풍 측 4명에서 9대 6이나 8대 7 정도로 좁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