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한국거래소가 상장 실사 단계에서 기업의 '계속성'을 직접 평가하도록 주관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상장 주관사가 작성하는 기업실사점검표에 사업의 계속성을 판단하는 항목을 새로 추가해, 상장 이후 드러나는 기업 부실과 관련한 책임 공백을 줄이겠다는 취지입니다. 파두·하이브 사태 등 상장 이후 논란이 반복되자, 거래소가 상장 심사 과정에서 주관사의 실사 범위와 역할을 보다 명확히 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됩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상장 단계에서 'DD(Due Diligence) 체크리스트' 항목에 '기업의 계속성'을 평가하는 문항을 추가해 내달 중 확정할 방침입니다. DD 체크리스트란 주관사가 상장 실사 단계에서 해당 기업의 내부통제와 관련한 사안을 직접 점검하는 기업실사점검표인데, 여기에 계속성과 관련한 사안을 추가 보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기존에는 △주식 등 발행 관련 사항 △최대주주 등 관련 사항 △이사회 및 감사 관련 사항 △관계회사 관련 사항 등 내부통제를 점검하는 항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국거래소는 이른바 파두 사태 이후 연초부터 증권사 실무진과 함께 DD 체크리스트 보완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내용을 논의해왔습니다. 최근 거래소는 증권사 실무진을 대상으로 간담회에서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이달 중 가안을 토대로 논의한 후 내달 내용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주요 내용은 DD 체크리스트에 기업의 계속성을 파악하는 항목을 추가해 주관사가 해당 기업의 사업성에 대한 의견을 내야 하고, 체크리스트의 모호성도 더 명확하게 보완하는 것입니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존에는 디디 체크리스트가 투명성 중심으로 돼 있고, 계속성에 관련한 부분은 없거나 비중이 적어서 여러 상장 트랙에 맞는 디디 체크리스트를 마련하고자 했다"며 "서로 간의 키높이를 맞추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DD 체크리스트를 명확히 보완하고, 기업의 계속성과 관련한 사항을 실사 점검에 추가함으로써 주관사의 책임 회피를 방지하는 목적으로 풀이됩니다. 그간 주관사가 상장 후 벌어지는 기업 부실에 대해서 '나 몰라라' 한다는 지적이 나왔는데요. 파두나 하이브 등 기업 상장 후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상장 주관사가 상장 단계에서 이를 정확히 인지하거나 공시하지 않았다는 논란입니다.
하이브 사태의 경우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2020년 IPO(상장) 직전 사모펀드(PEF) 세 곳과 비밀리에 '상장 조건 조건부 계약'을 맺고, 이로 인해 약 4000억원의 지분 매각 차익을 공유받았는데요. 이 계약은 상장심사와 증권신고서 과정에서 전혀 공시되지 않았으며, 주관사도 이를 검토·반영하지 않아 투자자들이 알지 못한 채 상장 첫날 PEF들의 대량 매도로 주가 폭락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공모가나 투자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주주 간 사적 계약’이었으며 증권신고서 기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거래소는 유사 사례 재발을 막기 위해 유가증권시장의 체크리스트에 주주 간 계약 여부를 점검 항목에 새롭게 추가한 바 있습니다. 이에 코스닥 상장 심사 체크리스트에도 모호성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23년 상장한 파두의 경우 경영진은 발주 감소로 매출 급감이 예상됐음에도 이를 숨기고 프리IPO로 120억원을 유치한 뒤 공모가를 높였으며, 상장 주관사도 부실 실사로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다만 파두 경영진이 상장 주관사에 발주 중단을 숨긴 점을 고려해 주관사 관계자들을 '혐의 없음' 처분했습니다.
모두 주관사와 거래소의 상장심사 단계에서 부실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이브 사태에서는 주관사의 실사 체크리스트인 DD 체크리스트의 구체성이 떨어져 해석이 주관사마다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때문에 상장 유불리에 따른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파두 사태의 경우 주관사 및 거래소가 상장 단계에서 해당 기업의 사업의 계속성 여부 및 사업 전망에 대해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나왔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이 회사가 깨끗하다는 것을 주관사가 보증했다면, 이제는 주관사가 사업 전망까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실사 리스트에 추가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며 "모호한 책임 소재로 거래소가 책임지던 것을 주관사에 나누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령 횡령 여부와 같은 부정은 직접 조사 후 알 수 있지만, 사업성에 대한 부분은 미래를 파악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주관사 입장에서는 구체성과 명확성을 높여 실사 점검이 수월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디디 체크리스트가 그동안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었는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습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