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1년…끝나지 않은 ‘위험’

사고 키운 시설물은 여전히 ‘곳곳에’
조류 대책 강화됐지만 책임자는 공백
항철위 이관 급물살…결과 지연 불가피

입력 : 2025-12-28 오전 11:38:39
[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제주항공 12.29 여객기 참사 1주기를 맞았지만, 사고를 키운 구조적 위험은 여전히 전국 공항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사고 이후 국토교통부가 항행시설물 전수 조사에 나섰으나, 항공기 충돌 시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콘크리트 둔덕 등 시설물 상당수는 아직도 철거되지 않았습니다. 참사의 책임을 둘러싼 진상 규명 역시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유가족의 상흔과 사회적 불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닷새 앞둔 24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사진=뉴시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전국 13개 공항의 항행안전시설물 위치와 구조를 전수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광주, 여수, 포항경주, 김해, 사천, 제주 등 7개 공항에서 항공기 충돌 시 쉽게 부러지지 않는 콘크리트 둔덕과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확인됐습니다. 이후 항공기가 이들 시설물과 충돌할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랐습니다.
 
그러나 실제 철거가 완료된 곳은 광주공항과 포항경주공항 두 곳에 그쳤습니다. 여수·김해·사천·제주공항에는 여전히 콘크리트 둔덕과 기초대 등 구조물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지난달 착공에 들어간 여수공항은 이달 말 공사 마무리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나머지 공항들의 개선 속도는 여전히 더딥니다.
 
일선에서 근무하는 조종사들은 사고 예방을 위한 환경 개선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읍니다. 국내 민항사에서 근무 중인 한 조종사는 “비상 상황에서 활주로 주변 구조물은 생사를 가르는 요소가 될 수 있다”며 “1년이 지났는데도 위험 시설물이 그대로라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연맹도 28일 참사 1주기 성명서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연맹은 “무안공항을 포함해 여전히 남아 있는 로컬라이저 둔덕의 위험, 특히 수많은 국민이 이용하는 제주공항의 H빔 철골 장애물은 아무리 숙련된 조종사라 하더라도 회피할 수 없는 구조적 위험”이라며 “이는 곧 탑승객의 생명을 방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콘크리트 둔덕 등 구조적 위험 개선이 지연되는 가운데, 국토부는 상대적으로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한 조류 충돌 예방 대책을 우선적으로 내놨습니다. 국토부는 지난 4월 ‘항공안전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조류 퇴치 전담 인력 최소 기준을 기존 2명에서 4명으로 확대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국 15개 공항의 조류 퇴치 전담 인력은 지난해 12월 145명에서 올해 11월 212명으로 늘었습니다.
 
그동안 국내 공항에 단 한 대도 없었던 조류 탐지 레이더도 올해 하반기 무안공항에 시범 도입됐고, 내년부터는 인천·김포·제주공항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조류 충돌 가능성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는 셈입니다. 다만 제도 개선과 별개로, 참사 발생 1년이 다 되도록 사고 책임 규명은 더디기만 합니다. 검찰에 송치되거나 기소된 사례도 없는 상황입니다. 일부 제도는 손질됐지만 책임 규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24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여객기 사고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는 12단계로 구성된 항공사고 조사 절차 가운데 6·7단계인 검사·분석·시험 및 사실조사 보고서 작성 단계를 6개월 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항공기 엔진은 프랑스 파리로 보내 정밀 분석을 마쳤고, 블랙박스에 기록이 남지 않은 사고 직전 4분7초간의 상황도 관제 기록 등을 통해 재구성했습니다. 조류 충돌 경위와 무안공항 콘크리트 방위각 시설물이 사고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용역도 마무리됐습니다.
 
그럼에도 조사 결과 공표는 계속 늦어지고 있습니다. 항철위가 사고를 키웠다고 지목받는 둔덕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토부 소속이라는 점에서 독립성과 공정성 논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7월 항철위가 ‘조종사가 심하게 손상된 오른쪽 엔진이 아닌 왼쪽 엔진을 껐다’는 초기 조사 내용을 유가족에게 공개하면서 갈등은 더욱 커졌습니다. 유가족 측은 조종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콘크리트 둔덕을 설치·관리한 국토부의 책임은 축소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항철위는 올해 말까지 중간보고서를 공표하겠다는 계획 아래 지난 4~5일 공청회 개최를 추진했지만, 유가족의 반대로 연기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상황은 또 한 번 변곡점을 맞았습니다. 항철위를 국토부 조직에서 국무총리 소속 독립 조사 기구로 전환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법 일부개정안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며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사 체계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향후 조사 일정과 결과 발표 계획은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아울러 국회는 앞선 22일 12.29 여객기 참사의 원인과 책임 규명을 위해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40일간의 활동에 돌입했습니다. 특위는 국토교통부와 국무조정실, 행정안전부, 경찰청, 한국공항공사, 제주항공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현장 조사와 청문회 등을 추진할 방침입니다. 이를 통해 항공기 조류 충돌 위험성에 대한 과소평가 여부와 기체 결함, 무안공항 둔덕 등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한편, 사고 조사 과정에서 축소·은폐 시도가 있었는지도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한편, 전남경찰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수사본부는 최근 항철위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블랙박스 분석 결과와 엔진 분해 조사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경찰은 국토부 공무원과 건설업체 관계자, 관제사, 조류 퇴치 담당자 등 44명을 입건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혐의가 인정될 경우 송치한다는 방침입니다.
 
지난해 12월29일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 7C2216편은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출발해 무안공항에 오전 9시3분께 동체 비상착륙을 시도하다 로컬라이저를 떠받치고 있는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하며 폭발했습니다. 이 사고로 179명이 사망하고 2명이 구조됐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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