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미국 전기차 보조금 폐지 여파로 북미 자동차 시장이 하이브리드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배터리·소재 업계에 연쇄 충격이 번지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안방이라 여겨지던 ‘북미’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는 가운데, K-배터리 기업들이 체결했던 수조 원대 공급 계약이 잇따라 해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둔화)이 장기화할 경우 산업 구조 전반을 흔드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 전경. (사진=LG에너지솔루션)
최근 미국 전기차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습니다.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 폐지 등 정책 변화로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투자 속도를 늦추고, 대신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차량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탓입니다.
이 여파는 고스란히 국내 배터리와 소재 업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달 들어서만 지난해 매출액(25조6200억원) 절반에 해당하는 13조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계약이 파기됐습니다. 앞서 지난달에는 미국 포드와 맺은 9조6000억원 규모의 계약과 미 배터리팩 제조사 FBPS와 체결한 3조9000억원 규모의 계약도 취소됐습니다.
양극재 업체 엘앤에프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엘앤에프는 2023년 테슬라와 2024~2025년 약 3조8347억원 규모의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지만, 지난달 29일 실제 공급 금액은 973만원에 그쳤다고 공시했습니다. 사실상 계약이 해지된 셈입니다.
잇단 계약 해지 배경에는 전기차 수요 둔화와 함께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8~9월만 해도 월 14만대 수준을 유지했지만 세제 혜택이 끝난 10월엔 6만9000대, 11월에는 6만5000대로 줄었습니다.
포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가 폐지되자 전기차 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차량 중심으로 전략을 선회했습니다. FBPS 역시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로 북미 상용차용 배터리팩 사업을 접고 철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전기차 대신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다만, 글로벌 업체들까지 가세하며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어 성과를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중국 업체들의 진입 속도가 빠르다는 점은 부담 요인으로 꼽힙니다.
포드는 중국 CATL과 협력해 ESS의 미국 내 생산을 추진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이 주력해온 북미 시장에서도 경쟁 구도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이후를 대비한 중장기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북미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배터리 산업이 이번 조정을 넘길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과 전략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