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SK온, 북미 전략 ‘합작’ 대신 ‘독자 전환’ 급선회

투자 발목 잡는 ‘족쇄’라는 판단
전기차 집중했던 기존 전략 수정

입력 : 2025-12-26 오후 1:30:23
[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LG에너지솔루션, SK온이 북미 시장 공략 전략을 전면 재편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안정적인 성장 공식으로 여겨졌던 완성차업체와의 합작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 운영 체제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둔화)’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배터리 산업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셈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혼다 배터리 합작공장 조감도.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주요 배터리 제조사들은 최근 미국 내 합작법인 구조를 대대적으로 손질하고 나섰습니다. 합작투자는 배터리 기업에게는 확실한 판매처를, 완성차업체에게는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망을 보장하는 ‘윈윈’ 모델로 평가받아왔습니다. 양측 모두 막대한 초기 투자 부담을 나누면서도 각자의 핵심 니즈를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이후 북미 현지생산이 필수가 되면서 합작투자는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예상보다 둔화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생산 계획을 잇따라 축소하거나 연기하면서 배터리 수요도 함께 꺾였습니다. 합작투자 구조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따 배터리 업계에서는 독자 전환으로 사업 방향을 급선회하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가장 적극적으로 합작 구조 효율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 24일에는 혼다와 함께 설립한 미국 합작사 ‘L-H 배터리 컴퍼니’의 건물과 생산 장치 등 주요 자산을 혼다 미국 법인에 매각했습니다. 당초 이 합작사는 오하이오주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해 2025년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이었지만, 전기차 시장 침체로 사업성이 악화되자 구조조정에 나선 것입니다. 반대로 지난 5월에는 제너럴모터스(GM)와 만든 합작사 ‘얼티엄셀즈’의 3공장을 인수해 단독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은 합작투자라도 상황에 따라 매각과 인수라는 정반대 방향의 선택을 한 셈입니다.
 
SK온의 움직임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포드와 함께 설립한 미국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지난 11일 해체하기로 했습니다. 양사는 2021년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켄터키와 테네시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 단지를 조성했지만, 불과 3년여 만에 결별을 선택했습니다.
 
블루오벌SK 테네시 공장 전경. (사진=SK온)
 
이처럼 단독 공장 운영 체제로 전환하면서 배터리 업체들은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 라인을 훨씬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됐습니다. 특정 완성차업체의 주문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고객사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여지도 넓어졌습니다. 생산량 조절이나 신제품 투입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파트너사의 동의를 구하는 번거로운 절차도 생략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북미 시장에서 독자 노선을 강화하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전기차에만 집중했던 기존 전략에서도 벗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외에도 에너지저장장치(ESS)나 하이브리드 차량용 배터리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완성차업체 한두 곳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여러 채널을 통해 매출을 창출하는 구조로 체질을 개선하려는 시도입니다.
 
다만 독자 운영 체제로의 전환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합작 구조 청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이 적지 않고, 독자 운영에 따른 리스크도 전적으로 배터리 업체가 떠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합작투자가 초기 시장 진입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시장이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서 독자 운영의 장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구조조정 비용이 부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외 다양한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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