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역베팅의 유혹

입력 : 2026-01-05 오후 1:46:47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도박은 인간에게 매우 큰 희열을 가져다줍니다. 직접 경험이라야 고작 명절 ‘쩜백’ 고스톱이나 내기 당구 정도에 불과한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도박을 쉽게 끊지 못하는 걸 보면 도박은 마약이나 음주 어쩌면 식욕, 성욕과 같은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박은 모두가 말리는 해악에 가깝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도박할 수 있게 만든 카지노나 경마장 같은 곳이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론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입니다. 엔터가 아니라 전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겠지만.
 
도박의 묘미는 무엇일까요? 적은 돈을 한 번에 크게 불릴 수 있다는 대박의 꿈? 물론 그런 꿈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만 아마도 이겼을 때 얻는 짜릿한 기분 때문에 도박을 끊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게다가 그것이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해서 남보다 크게 먹는 역베팅이라면, 일반적인 승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도파민일 겁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동전주 된 곱버스 
 
그 역베팅을 주식시장에서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카지노, 경마장, 경륜장 등 공식 도박장은 최소한의 제어장치를 두고 있으나 주식시장엔 아무런 제약도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위 그래프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의 주가 차트입니다. 코스피200 지수선물의 일일 변동률을 거꾸로 2배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로 흔히 ‘곱버스’라고 부르는 그 종목입니다. 다른 운용사들도 곱버스 ETF가 있는데 삼성자산운용의 이 종목이 시가총액이 가장 큽니다. 주가가 몇 토막이 났는데도 시총이 1조3000억원을 넘습니다. 
 
2026년 새해 들어 두 번째 거래일인 5일 코스피는 4400선을 돌파했습니다. 이날 KODEX 곱버스의 주가는 500원대, 흔히 말하는 동전주입니다. 1000원이 깨진 지 불과 석 달 만에 반토막이 났습니다. 이러다가 주가가 0원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추락입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ETF의 기초 지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주가는 언제든 거래하기 편한 단위로 되돌릴 수 있으니까요. 그저 10주를 1주 혹은 2주를 1주로 병합시키면 그뿐입니다. 이 종목 보유자들의 잔고도 10주가 1주, 또는 2주가 1주로 줄어들 겁니다. 그래서 주가가 더 떨어질 수 있는 자리를 여유 있게 만드는 것이죠. 
 
코스피200지수가 계속 오른다면 이 종목의 주식 수는 계속 줄어들 겁니다. 물론 곱버스를 찾는 투자자들이 계속 많다면 운용사는 ETF의 시총이 1조원을 넘을 수 있게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위험-기대수익’이 동등하지 않은 환경
 
도박에서의 역베팅은 대개 이겼을 때의 배당을 크게 얻기 위해 이뤄집니다. 승률이 낮은 스포츠게임에 소액을 역베팅하면 경기를 지켜보는 재미와 만약에 본인의 예상이 맞았을 때 얻는 큰 수익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곱버스는 조금 다릅니다. 등락의 반대로 2배를 걸긴 하지만 부담하는 리스크에 비해 얻는 것이 크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1990년대 말 IT 버블 이후 처음 경험하는 초강세장에서 역방향으로 투자하는 것이니까요. 이 추세가 무너지지 않는 한 이길 수가 없는데 약세 전환을 예상하고 2배를 베팅하는 건 무리입니다. 주식 투자가 아니라 주식 베팅을 하더라도 차라리 추세를 쫓아 2배 베팅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정방향 ETF 투자자가 지는 위험은 100%이며 기대수익률은 무한대입니다. 반대로 역방향 투자자는 100%의 기대수익을 위해 100%의 위험을 부담합니다. 곱버스 투자자의 경우 기대수익은 최대 200%라도 50% 상승에 100% 자산을 날릴 수 있어 그만큼 회복 기회를 잃는다는 부담을 떠안습니다. 부담하는 위험의 크기와 기대이익이 동등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도구 많지만 적재적소에 써야
 
인버스 ETF 등 역방향 종목들은 역베팅을 위해 만든 상품이 아닙니다. 전체 자산의 위험을 헤지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든 상품입니다. 기관이나 전문 투자자만 접근할 수 있었던 선물·옵션 투자의 효과를 개인도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도박을 하는 개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KODEX 200선물인버스2X 매매 내역을 보면 기관과 외국인도 있지만 주로 개인이 순매수한 날이 많습니다. 코스피가 4000을 넘어 고공행진 중인데도 이들은 결코 웃지 못합니다. 과도한 상승, 과도한 하락한 역베팅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주가 랠리가 과도할 때 인버스 투자에 눈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추세가 강할 땐 편승하거나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주식시장이 성장하고 증권사, 운용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양한 종류의 ETF, ETN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쪽으로의 쏠림이 강할 때 어김없이 그에 착안한 신상품을 내고 투자자들을 유혹합니다. 
 
지난해 국제 금 시세가 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며 초강세 행진을 펼쳤습니다. 당연히 역방향 상품이 나왔습니다. KODEX 골드선물 인버스 ETF는 물론 KB·메리츠·신한·삼성·한국투자증권에서 내놓은 인버스 2X 금 선물 ETN도 상장돼 있습니다. 환율 변동을 헤지한 ETN(H)도 구비돼 있습니다. 금 선물이 있는데 은 선물은 없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달러가 약해지고 있는데 그보다 더 저평가된 엔화의 흐름이 언젠간 바뀔 거라며 그에 투자하게 만든 엔·달러 선물 상품도 정방향, 역방향, 곱버스 다 있습니다. 
 
원하는 요리를 할 수 있게 각종 칼과 도구가 구비돼 있습니다. 곱버스는 가급적 손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은 날 선 사시미 칼입니다. 투자자가 이 칼을 들고 요리가 아니라 칼춤을 춘다면 칼에 베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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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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