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드디어 코스피 5000 고지를 밟았습니다. 투자자들 듣기 좋은 공약처럼 여겨졌던 ‘코스피 5000’이 새 정부 출범 첫돌을 맞기도 전에, 무려 5개월이나 남겨두고 현실이 됐습니다.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분기 이익을 기록했고 현대차는 세계 시장에 로봇의 힘을 보여주며 기대감을 한껏 높여, 5000은 목표가 아니라 거쳐 가는 숫자인 양 증권사들은 부랴부랴 목표점을 재설정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5000을 달성한 지금,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야 합니다. 아직 브레이크를 밟을 시점은 아니지만 언제라도 멈춰 설 수 있도록.
하루 전만 해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난리가 날 것처럼 요동쳤습니다. 미국은 주말과 19일 휴장일을 건너 20일(현지시간)에 이번주 첫 거래를 시작했는데요. 이날 미국 국채금리(10년 만기)가 4.227%에서 4.300%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다른 만기물들도 상승폭이 다를 뿐 전부 올랐습니다.
일본 국채 10년물도 19일에 2.274%로 뛰더니 20일엔 2.341%로 연이어 갭상승을 기록했습니다. 일본 국채 30년물은 19일에 무려 3.914%까지 올랐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30년물 국채금리가 3.4%대니까 제로금리로 상징되던 일본 장기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진 겁니다.
2022년 12월 미국과 한국의 국채금리(10년 만기)가 역전돼 미국이 한국보다 높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벌써 3년인데요. 미국과 한국이 똑같은 이율로 돈을 빌려달라 손 내밀었을 때 나라면 누구한테 돈을 빌려줄까요? 빚을 갚을 능력, 즉 경제력과 기초체력에서 단연 앞선 미국에 빌려주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늘 미국보다 이자를 더 많이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어야 했는데 지금은 거꾸로입니다. 이런 상황이 3년 넘게 지속돼 마치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비정상입니다. 그런데 이젠 이자도 안 주던 나라 일본마저 우리보다 이자를 더 주는 국면이 펼쳐진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30년 만기 장기금리에 한해서입니다.
코스피가 꿈의 숫자로 여겨지던 '오천피'에 도달하며 코스피 5000 시대가 열린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관계자들이 코스피 5000 돌파를 축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의 금융시장 급변엔 두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미국 국채금리 발작은 정부의 욕심에서 비롯됐고 일본 국채금리 급등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중의원 해산이 원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린란드 점유 의지를 드러내며 이에 저항하는 유럽 나토(NATO) 우방국들에게 으름장을 놨습니다. 그린란드에 파병한 8개국에겐 관세율 인상을 예고했죠. 이걸로 끝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군사력을 동원할 것처럼 공세 수위를 높였습니다. 이에 EU는 보복관세와 미국채 매도 가능성을 내비치며 맞섰습니다.
결국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면서 불안 증상은 잠시 누그러졌지만, 그린란드 이슈가 다른 사례처럼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로 마무리될지, 갈등이 재발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다보스 연설에서까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죠. 어차피 몇 달 후면 임기가 종료돼 교체될 텐데 이렇게 공세 수위를 높이는 걸 봐선, 시장과 동떨어진 정책을 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시장이 불안하게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일본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높은 지지율을 뒷배 삼아 중의원을 해산, 다시 총선을 치르게 됐습니다. 완화 정책을 표방하는 다카이치 정부의 행보에 더욱 힘이 실릴 전망입니다. 엔화 약세에 기반한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정부, 그래서 물가와 금리 상승이 예상됩니다.
일본의 금리가 이렇게 계속 뛰면 자연스럽게 엔케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에 투자돼 있는 돈이 일본으로 몰리면 엔화 약세는 완화되겠지만 그 매도가 주가 등 자산가격을 흔들 가능성이 큽니다.
하필이면 이번 사태가 전 세계 주식시장이 한창 뜨거울 때, 이번 상승에 불을 지핀 인공지능(AI)에 버블 주장이 계속 나올 정도로 달아오른 상태에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하게 오른 만큼 다른 한편에선 조정 에너지도 커졌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하락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이 갖춰졌습니다.
금융시장이 급박하게 돌아간 그날, 국내 주식시장의 과열된 분위기가 좀 식는가 했지만 21일 오전 개장 무렵 나타난 조정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가 양전환했고 현대차는 목표가 상향에 힘입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2일 5000선을 돌파했습니다. 1~2개월째 눈치 보기 등락을 이어가는 미국, 중국 등과는 사뭇 다른 장세입니다.
한국 주식시장은 정부의 자본시장 개혁을 뒷배 삼아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하지만 신기록의 배경엔 정부의 노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가 상승의 근간엔 기업의 이익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AI 반도체, 방산, 조선 열풍 등에 힘입어 우리 기업들이 실적을 배가한 덕분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높지 않습니다. 기관에 따라 1.0%에서 1.9%까지 넓게 퍼져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힘이 세다는 이유로 글로벌 증시와 동떨어져 질주할 수는 없기에 전체를 봐야 합니다. 기업들의 영업 환경이 급변할 수 있는 변화가 찾아올지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입 밖으로 말하지 않을 뿐, 내면에선 계속 오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계좌를 볼 때마다 언제 이익을 실현해야 하나 고민하는 투자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일단 과속 중인 차량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이 먼저입니다. 전방을 주시하며 언제든 브레이크를 밟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