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항공사들이 ‘안전’을 이유로 기내에서 보조배터리 사용을 전면 금지한 가운데, 정작 승객들을 위한 기내 충전 설비는 거의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개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으로 기내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시청하며 비행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충전 환경은 마련하지 않은 채 보조배터리 사용만 막는 것은 소비자의 이용권을 제한하는 조치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27일 <뉴스토마토>가
대한항공(003490) 등 국내 항공사 11곳을 대상으로 기내에서 태블릿PC 등을 충전할 수 있는 USB포트 등 충전 설비 설치 현황을 조사한 결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020560)을 제외한 대부분의 항공사에서 USB포트 등의 설비를 갖추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한항공은 여객기 145대(2025년 12월 기준) 가운데 136대에서 USB포트 또는 110볼트(V) 콘센트를 통한 유선 충전을 지원하고 있으며, 아시아나항공도 68대 중 60대에서 유선 충전이 가능합니다. 반면, 저비용항공사(LCC)의 상황은 다릅니다.
진에어(272450)는 31대 중 21대, 에어부산은 21대 중 8대만 충전이 가능했으며, 에어서울은 6대 운용 기재 가운데 2대에만 충전 포트가 설치돼 있습니다.
국적사 중 가장 먼저 기내에서 보조배터리 사용을 금지했던 이스타항공의 경우 총 20대 중에서 단 한 대도 유선 충전을 지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주항공(089590)은 여객기 43대 가운데 8대만 유선 충전이 가능합니다. 오는 2월1일부터 기내에서 보조배터리 사용 전면 금지하겠다고 이날 발표한 에어프레미아는 총 9대 운용 기재 중 9대 모두 유선 지원을 하나, 기내에서 USB포트 이용은 불가합니다.
보조배터리 사용 전면 금지에 아직 동참하지 않은 항공사들 역시 사정은 비슷합니다. 티웨이항공은 46대 중 18대에서만 충전이 가능하고, 에어로케이항공은 충전 가능한 기재가 단 한 대도 없습니다. 파라타항공 역시 4대 중 1대에서만 USB 포트로 충전이 가능합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LCC가 기내 스크린을 갖추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보조배터리 사용까지 금지하면서 이용객 불편이 커지고 있습니다. 전날 에어부산을 이용해 일본 오사카를 다녀온 직장인 김모(41)씨는 “비행 시간이 2시간이 채 안 됐지만 방전된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없어 OTT도 보지 못했다”며 “결국 도착할 때까지 창문만 바라보고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단거리 노선은 그나마 견딜 수 있지만, 장거리 노선에서는 불편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LCC들이 최장거리로 운항하는 인천~발리 노선의 경우 비행시간이 약 7시간에 달하는데, 이 시간 동안 별다른 기내 엔터테인먼트나 충전 수단 없이 이동해야 한다면 소비자 불편은 불가피합니다. 이처럼 기내 충전 환경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보조배터리 사용까지 제한되면서 승객 불편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충전 설비를 충분히 갖추지 않은 채 보조배터리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익과 편의성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조치”라며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사용이 일상화된 만큼 항공사들이 최소한의 충전 환경을 갖추려는 책임이 동반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안전 우려를 고려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도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보조배터리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면서 안전 의식을 각인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에 대부분 항공사들이 사용 금지에 동참하고 있다”며 “전 좌석에 충전 포트를 설치하거나 별도의 충전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재정적 부담이 크고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