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산업계가 정부의 제네릭 의약품 약가 인하에 반대하면서 전면에 내세운 주요 논거 중 하나는 의약품 수급 불안과 고가의 수입 의약품 점유율 확대입니다. 특히 일본의 사례를 들어 제네릭 생산 감소로 인한 나비효과를 우려했는데, 양국의 정책적 방향성 차이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비교였습니다. 과거 연구에선 한국과 일본에서 판매 금액이 높은 제네릭인데도 유럽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다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제네릭 의존도가 높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2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4 급여의약품 청구 현황'에 따르면 급여의약품 등재 품목 2만1962개 가운데 단독 성분으로 등재된 오리지널 의약품은 2474개로 11.3%에 그칩니다. 90%에 가까운 품목이 제네릭인 셈입니다.
정부는 제네릭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급여의약품의 기형적 구조를 신약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오는 7월부터 새로운 약가제도를 시행키로 했습니다. 오리지널 대비 53.55%인 제네릭 약가를 40%까지 낮추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일본 공급 지연 사례 강조…한국과는 다른 제네릭 정책
제약산업계는 정부의 일방적인 제네릭 약가 인하가 결국 고가의 수입의약품 가치만 키워줄 뿐이라며 일본 사례를 들고 나왔습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관련 단체 5곳이 모인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2일 향남 한국제약협동조합에서 노사 현장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비대위는 제네릭 약가 인하가 제약사 매출 구조에 악영향을 미쳐 고용 안전성을 해칠 뿐 아니라 의약품 수급 불안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박지만 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일본의 경우 최근 약가 인하로 제네릭 32.1%, 4064개 품목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해 공급 부족 의약품 275개 중 38.6%가 채산성 악화에 기인했다"며 "현재도 항생제, 분만유도제, 신생아 호흡곤란 치료제 등 필수의약품의 품절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약가가 떨어진 제네릭 생산이 줄어들면 국산 전문의약품 생산이 감소해 고가의 수입 의약품으로 대체된다는 주장의 근거로 일본 사례를 꺼내든 겁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일본의 약가 인하는 의약품 공급에 악영향을 주긴 했습니다. 다만, 일본의 예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제네릭을 대하는 정책적 태도가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제네릭 장려 정책을 실시하는 대표적 국가입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2024년 펴낸 '약가 인하 정책이 제약기업의 성과와 행태에 미치는 영향' 리포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 리포트를 보면 일본 후생노동성은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제네릭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환자가 특별한 의학적 사유 없이 특정 오리지널 의약품을 요구하는 경우 제네릭과 오리지널 간 급여 약가 차이의 25%에 해당하는 추가 요금을 부과합니다. 이와 달리 한국 정부는 제네릭 의존도를 줄이려는 취지로 새로운 약가제도 개편안을 마련했습니다.
유럽에서나 통한다?…한국 제네릭은 유럽서 출시도 안 돼
제네릭 약가 인하를 강행하기에는 시장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학계에서도 나왔습니다.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약가제도 개편안 관련 정책 토론회에 학계 전문가로 참석한 권혜영 목원대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는 유럽을 비교 대상으로 들어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권 교수는 토론회 도중 "해외를 기준으로 국내 약가를 깎는 방식은 국경이 인접해 국가 간 병행 무역이 활발한 유럽 등에서나 참고할 방식이지 가격 결정 기준이 될 수 없다"며 "단순히 해외 약가를 가져와 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퇴보하는 후진국형 발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한국 시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외국과 동일한 수준으로 약가를 조정하는 방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제도 개편안이 유럽에서나 통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히는 발언입니다.
실상을 따져보면, 한국과 유럽의 의약품 처방 환경을 같은 잣대에 올려놓긴 어렵습니다. 유럽 안에서도 국가마다 정책이 다른 탓입니다. 예컨대 독일과 영국은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줘 제네릭 처방을 권장하는 반면 덴마크,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은 성분명 처방을 허용해 약가가 저렴한 제네릭 처방을 간접 유도하는 식입니다.
한국의 제네릭 약가와 처방 현황을 유럽과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는 근거는 정부 용역보고서에서도 확인됩니다. 한국에서 개발·생산된 제네릭의 양 자체가 많아 내수시장에선 우월적 지위를 차지했지만, 해외시장에선 국내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이 핵심입니다.
최상은 고려대 약학대 교수는 2017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제외국과의 약가 수준 비교 평가 및 지침 개발 연구 용역보고서'에서 "본 연구에서 선정한 80개 성분 중에도 유럽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의약품들이 있었는데, 제네릭 의약품이 대부분이었다"며 "이들 제네릭 의약품은 판매 금액 순위로 선정된 것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일본에서 개발된 의약품으로 유럽 시장으로 진출하지 못한 의약품들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