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전기차 시장의 포문을 열었던 테슬라가 고급 전기차 라인업 일부 생산을 중단하며 사업의 무게 중심을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과 로보택시로 옮기고 있습니다. 테슬라가 한발 물러선 전기차 시장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전통 완성차 업체들의 기회 요인으로 꼽힙니다. 특히 테슬라가 상징성을 지녔던 고급 전기차 시장에서 공백이 생기면서 현대차·기아가 이를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기아 본사 모습. (사진=현대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8일(현지시각) 열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2분기부터 모델 S와 모델 X 생산을 점진적으로 줄여 사실상 중단할 것”이라며 “로보택시와 휴머노이드 로봇에 집중하기 위한 전반적인 사업 재편의 일환”이라고 밝혔습니다. 테슬라는 모델S·X를 생산해온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공장을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 거점으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테슬라가 고급 전기차 시장에서 발을 빼면서 생긴 공백은 현대차·기아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테슬라가 상징성을 지녔던 고급 전기차 영역에서 경쟁 구도가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올 하반기 첫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90 출시를 앞두고 있어 테슬라의 모델 S·X 자리를 일부 대체할 전략적 제품으로 거론됩니다.
특히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기반으로 한 고급 전기차 개발 경험을 이미 축적해왔다는 점에서 테슬라의 공백을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가격 인하 경쟁에 집중해온 테슬라와 달리, 현대차·기아는 상품성과 브랜드 이미지를 앞세운 전략을 유지해온 만큼 고급 전기차 시장에서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분석입니다.
다만 이런 기회론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수요가 본격적으로 되살아나지 않는 한 이 공백이 곧바로 현대차·기아의 실질적인 수혜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시장조사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MI)도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해 150만대에서 올해 110만대로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최근 미 경제매체 CNBC는 미국에서 10%를 넘겼던 전기차 점유율이 조만간 한 자릿수로 떨어질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확대에 속도를 내기보다,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을 병행하는 전략을 당분간 유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전기차 시장에 대한 후퇴라기보다 수요 회복 시점에 맞춘 전략 조정에 가깝다는 평가입니다.
실제로 현대차의 2025년 글로벌 친환경차 판매는 하이브리드차 라인업 강화와 북미 시장에서의 SUV 하이브리드 판매 확대에 힘입어 전년 대비 27% 증가한 96만1812대를 기록했습니다. 이 가운데 하이브리드차는 63만4990대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반면, 전기차 판매는 27만5669대에 그쳤습니다.
이 같은 판매 구조는 현대차·기아가 전기차 시장을 포기했다기보다, 수요 회복 속도에 맞춰 전동화 전략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테슬라가 해당 차종을 전혀 생산하지 않는다면 현대차·기아에는 분명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캐즘 국면에서도 전기차 수요가 완전히 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장이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 중장기적으로는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이라고 했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