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현재 이재명정부의 대북정책은 '바늘구멍'으로 집약할 수 있겠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끊임없이 노력해서, 바늘구멍이라도 뚫어야죠. 자꾸 피하면 쫓아다니면서 얘기도 하고 말도 붙이고"라고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나타냈다. 지난해 12월 초에도 "지금 대한민국과 북한의 상태는 바늘구멍조차도 없는 상태"라며 "남북 간에 대화가 완전히 단절됐고, 하다못해 비상연락망까지 끊어진 상태"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피스 메이커'(평화 중재자) 역할을 요청한 것도 "북한은 한국의 대화 노력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있지만, (한국에 비해) 미국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북한이 중시하는 '체제 보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것도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게 북한 판단"이라며 "지금은 북·미 대화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미국을 통해 '우회로'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1월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관하에 극초음속미사일 발사훈련을 진행했다고 5일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국가정보원과 통일부 등이 다각도로 바늘구멍 뚫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각계에서 정부에 이런 라인, 저런 사업이 있다고 정부에 조언을 하고 있지만, 별다른 소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라인이 끊어진 게 아니라, 북한이 전원을 꺼버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이런 상황에서 남북 관계에 악재만 계속 쌓이고 있다. 2026년이 시작된 지 사흘 만에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침공,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뉴욕으로 압송해 갔다. 개별 국가의 주권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국제법적 비판과는 별개로 작전 자체로만 보면 거의 완전무결한 작전이었다. 작전의 일부만 드러난 상황이지만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정보전, 극초단파 등 최첨단 무기, 마두로 측근들에 대한 포섭 작전 등으로 델타포스 투입 3시간 만에 마두로 대통령 부부의 신병을 확보해 버렸다. 일종의 '참수 작전'을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다.
트럼프 1기 때 미 국무장관을 지낸 마크 폼페이오는 2018년 중앙정보국(CIA) 국장 시절 첫 방북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을 때, 김정은이 "당신이 나를 죽이려 했던 것을 안다"고 했고 이에 대해 자신은 "여전히 당신을 죽이려 한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2023년에 낸 회고록에서 밝혔다.
김정은, '핵전쟁 억제력' 고도화 필요성 역설
실제로 미국이 북한의 최고지도부를 제거할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베네수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부 수립 초기부터 미국과 맞선다는 명분으로 철저하게 내부 통제를 해온 사회다. 또 미국 세력권인 미주 대륙에서 고립무원 상태였던 베네수엘라와 달리 최대 후견국인 중국, 러시아와 바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한 최고지도부 제거 작전은 사실상 한반도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북한에는 큰 방패막이다.
김정은이 '마두로 압송'을 어느 정도로 충격적으로 인식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더욱 더 핵에 집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마두로 압송' 다음날, 김정은은 북한의 '핵전쟁 억제력 고도화' 필요성에 대해 "최근의 지정학적 위기와 다단한 국제적 사변들이 설명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미 북한은 핵을 갖지 못한 리비아의 카다피와 이라크 후세인의 말로를, 북한이 핵을 가져야 하는 근거 중 하나로 설명해 왔다. 트럼프의 잇따른 근육 자랑을 보면서 김정은이 트럼프를 신뢰하기 어려운 인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9월과 올해 1월, 즉 현 정부 집권 이후에도 정보사가 개입해 북한에 무인기를 보냈다는 것도 작은 사건이 아니다. 정부가 신속한 조사에서 나서 '윤석열 대통령실' 근무자들이 주도한 사건이라는 점을 밝혀내면서 초기에 가닥이 잡히기는 했지만, 남북 관계 악재임은 분명하다.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 부부장까지 등장하면서, 남북 관계 개선 동력을 현저하게 약화시켰다.
미국과 러시아 간 유일한 핵군축 협정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 종료 문제도,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환경에는 암울한 요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2023년에 미국이 러·우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러시아 본토의 핵시설을 사찰하려 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푸틴이 그러거나 말거나 1기 집권 때부터 이미 시큰둥했던 트럼프는 급속도로 핵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는 중국이 빠진 핵군축 협정은 의미가 없다며 멀리 보면 1972년 전략무기제한협정1(SALT1) 이래 54년간 이어져 온 마지막 핵군축 조약을 종료해 버렸다. 중국은 핵군축은 핵탄두를 5000기 이상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가 할 일이지, 600기 불과한 중국과는 관계없다며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미국으로 압송되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북, 미국 허용 '인도 지원' 수용도 불투명
미·러 간 전략 핵무기 수를 제한해 온 마지막 조약은 사라지고 새로운 군축 틀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10월30일 33년 만에 핵실험 재개를 지시한 바 있다. 핵 보유국 간 군비 경쟁의 문이 활짝 열린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북한에 비핵화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북한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국제 환경 아닌가?
지난 6일에는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북한제재위원회가 이사국(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만장일치로 대북 인도적 사업에 대한 제재 면제를 승인했다. 트럼프정부 반대로 수개월째 보류됐던 17건의 제재 면제가 미국 승인 아래 풀린 것이다. 오는 4월 트럼프의 중국 방문에 앞서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끌어내기 위한 사전 조치 성격이다. 그 전날 한국 정부 고위관계자가 북한 문제와 관련해 "며칠 내로 어떤 새로운 진전 사항이 있을 것 같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경제 분야는 물론이고, 식량이나 보건의료 분야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해 '지원'이라는 표현 자체를 거부해 온 지 이미 오래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