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미국 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 이후에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통상 압박 기조를 재확인하면서, 한동안 완화 기대가 돌던 대미 수출 환경이 다시 불확실성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철강은 50% 고율 관세 부담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고, 조선은 미국 내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의 속도 조절 우려가 제기됩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통상정책 변동성 확대로 철강업계의 고관세 완화 기대가 약화되고, 조선업계의 미국 진출 프로젝트 역시 일정 지연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법원 판결로 상호관세 체계에 제동이 걸렸지만, 행정부가 다른 법적 수단을 활용해 관세를 유지·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하기 어렵다는 평가입니다.
통상 압박 기조를 재확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 불확실성이 철강과 조선 등 한·미 산업 협력 전반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모습. (사진=챗GPT)
고율 관세 장기화…타격 불가피
우선 철강업계가 이번 판결로 당장 받는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현재 미국이 수입산 철강에 부과 중인 50% 관세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아니라 국가 안보를 이유로 긴급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트럼프 1기 당시 232조를 통해 철강·알루미늄 고율 관세가 부과된 바 있습니다.
다만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최근 시사했던 철강·알루미늄 관세 적용 방식 ‘조정’ 논의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체 관세 또는 보완적 조치를 언급하며 강경 기조를 재확인한 만큼, 한국산 철강에 대한 실질적 부담이 단기간에 완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됩니다.
업계에 따르면 50% 관세가 유지될 경우
포스코(005490)와
현대제철(004020) 등의 연간 추가 관세 부담은 약 5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미국은 한국 철강의 고부가 제품 주요 시장으로, 자동차강판·에너지용 강재 등 전략 품목의 가격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합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수출 물량 대비 매출 기여도가 높은 핵심 고부가 시장”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철강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어 대미 수출 여건은 일본조차도 앞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평택항에 쌓여 있는 철강 제품. (사진=연합뉴스)
해양 행동계획 차질…마스가 제동
조선업계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한국 조선사들이 참여를 타진해 온 1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구상이자 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 역시 정책 불확실성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지난 13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해양 행동계획(MAP)’을 통해 외국산 상업용 선박에 수입 화물 중량당 항만 수수료를 부과해 ‘해양안보신탁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마스가 프로젝트 등 자국 조선업 재건을 위한 핵심 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었습니다. MAP에 명시된 항만 수수료는 존스법(미국 건조·미국 선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사실상 모든 외국산 상업용 선박이 미국 항만에 입항할 때, 수입 화물 중량(1kg당 1~25센트)을 기준으로 부과됩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이 ‘대통령의 비상 권한을 이용한 관세 부과’를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선박 수수료 징수 계획에도 여파를 미칠 것으로 관측됩니다. 대법원이 국제 상거래 규제 및 조세 권한을 의회의 전속 권한으로 명확히 규정한 가운데, 외신과 전문가 등 미국 내부에서는 선박으로부터 걷는 항만 수수료 역시 본질적으로 ‘조세’의 성격을 띤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수입품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무역 장벽인 만큼 행정명령만으로 강행할 경우 글로벌 해운사와 수입업체들로부터 즉각적인 위헌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입니다. 수수료 징수를 합법화하고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하려면 결국 의회 차원의 특별법 제정이 필수적이라 조선업 재건에 필요한 예산 확보 시기가 지연될 여지가 큽니다.
이에 따라 마스가 프로젝트에 발맞춰 이미 선제적으로 현지 투자에 나서왔던 국내 조선 3사의 셈법도 복잡해졌습니다.
한화오션(042660)은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약 7조원 규모 확장을 추진 중이며,
HD현대(267250)와
삼성중공업(010140)도 현지 파트너십을 확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연방 차원의 재정 지원과 발주 로드맵 확정이 밀릴 경우, 적자 리스크를 방어해야 하는 한국 조선사들의 현지 대규모 설비투자 시점도 유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관세·입법·예산이 동시에 얽힌 사안인데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보니 당장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면서도 “정부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는 한 당분간 대미 투자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