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경영을 찾아서)장부 밖의 진실 : '작은 선율'과 비재무적 자산의 가치화[재무/ESG]

관계의 총체성으로 쓰는 프루스트의 비즈니스 서사
(제5회)1부 스완네 집 쪽으로 4화

입력 : 2026-03-02 오후 12:50:05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스완'이라는 인물의 사랑을 관통하는 가장 강렬한 예술적 매개체는 소설 속 작곡가 벵퇴유의 소나타다. 특히 그 곡 속에 흐르는 '작은 선율(la petite phrase)'은 스완의 영혼을 흔들고, 그가 오데트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구체적인 실체로 형상화한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의 독립된 장(章)인 「스완의 사랑(Un Amour de Swann)」에서 다뤄지는 핵심 서사다.
 
상류사회의 세련된 심미안을 지닌 부르주아 지식인 스완은 애초에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던 여인 오데트에게 알 수 없는 연유로 병적인 집착과 질투를 느끼며 빠져든다는 게 「스완의 사랑」의 얼개다. 그에게 오데트라는 여인은 설명이 가능한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라, 요약하면 벵퇴유의 선율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재구성된 '예술적 환상'이자 경영학 용어로 '무형의 가치'였다.
 
"그것은 갑자기 나타났다. (...) 스완은 그 선율이 자기 앞에 지나가는 것을, 거의 만질 수 있을 정도로 느끼고 있었다. (...) 그것은 그에게 무형의 보물에 대한 사랑을 제안했다(Elle était soudain apparue... Swann l’avait sentie passer devant lui, presque tangible... Elle lui avait proposé l’amour d’un trésor immatériel)."
—Marcel Proust,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Tome I, Du côté de chez Swann,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987, p. 206.
 
스완에게 이 짧은 선율은 단순한 음의 나열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사랑에 의미를 부여하는 절대적인 '가치'의 상징이다. 현대 경영의 전장에서 기업이 마주하는 수많은 자산 중에도 이 '작은 선율'과 같은 존재가 있다. 재무제표라는 딱딱한 종이 위에는 숫자로 적히지 않지만, 기업의 명운을 결정짓는 '무형의 보물(trésor immatériel)'. 브랜드의 평판, 조직의 문화, 고객의 신뢰, 그리고 인적 자본의 창의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애플은 2013년 코카콜라를 제치고 글로벌 가치 순위 1위에 올라섰다. (사진=픽사베이)
 
장부 밖의 진실
 
전통적인 회계기준(K-IFRS 등)은 지극히 보수적이다. 공장 부지, 설비, 재고와 같은 눈에 보이는 '유형자산'은 꼼꼼히 기록하지만, 기업이 수십 년 쌓아온 브랜드 파워나 ESG 경영을 통해 획득한 사회적 신뢰는 '영업권'이라는 모호한 항목 속에 숨겨두거나 아예 누락시키기 일쑤다. 스완이 벵퇴유의 소나타를 들으며 느끼는 그 숭고한 감동을 단지 '공기의 진동수'로만 기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컨대 국제회계기준(IFRS) 체계에서는 내부 창출 브랜드 가치, 조직문화, 고객 신뢰 등은 일반적으로 자산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식별 가능성(identifiability), 통제 가능성, '미래 경제적 효익(future economic benefits)'의 신뢰성 있는 측정 가능성 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부가치(Book Value)와 시장가치(Market Value) 사이의 괴리는 구조적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물론 기업은 자산 재평가를 통해 토지나 건물 등의 가치를 새롭게 현실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평가는 주로 공정가치가 존재하는 '눈에 보이는 것'에 국한한다. 건물의 시세는 다시 매길 수 있지만, 그 안에서 흐르는 숙련된 노동자의 노하우나 끈끈한 조직문화는 장부상에 강제로 기입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보이지 않는 프리미엄 '90%'
 
이에 따라 오늘날 기업가치와 장부가치 사이의 괴리가 어쩌면 기업 경영의 본질적 고려 사항이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미국의 지적 자산 평가 전문 기업인 오션토모(Ocean Tomo)의 '무형자산 시장가치 연구(Intangible Asset Market Value Study, 2020년)'에 따르면 S&P 500 기업의 가치 구성은 지난 반세기 사이에 극적으로 역전됐다.
 
1975년 S&P 500의 총 시가총액은 약 7150억달러였으며, 이 중 공장 설비 등 유형자산이 5940억달러로 전체 가치의 83%를 차지했다. 그러나 2020년 시가총액이 31조6000억달러로 팽창하는 동안 유형자산은 3조1000억달러로밖에 커지지 않아 비중이 10%로 급격히 축소되었다. 반면 지식재산권(IP), 소프트웨어, 데이터, 브랜드 가치 등으로 구성된 무형자산은 무려 28조5000억달러(90%)라는 압도적 규모로 성장했다.
 
이 90%의 영역이 프루스트의 용어로 말하면 "무형의 보물"이다. 무형의 보물에 대한 스완의 사랑이 (비록 최종적으로는 모종의 달관 형태를 띠게 되지만) 환멸로 귀결하는 것처럼, 시장의 무형자산 역시 자본주의가 만든 신기루라는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스완은 훗날 "내 타입도 아니고, 사랑하지도 않았던 여자를 위해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허비했다"며 탄식한다. 우리가 오늘날 숭상하는 수조 원 가치의 브랜드나 플랫폼 권력 역시, 언젠가 기술의 문법이 바뀌거나 신뢰의 균열이 생기는 순간 스완의 탄식처럼 흔적 없이 사라질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적어도 오늘날의 경영 현장에서는 이 숫자가 거부할 수 없는 실체이다. 장부가치가 기업의 '과거 발자국(역사적 원가)'이라면, 기업가치(시가총액)는 미래에 대한 '시장의 약속(기대수익)'이다. 시장은 기업이 보유한 특허, 데이터 거버넌스, 그리고 이해관계자와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의 현금흐름을 예측한다. 재평가 모델이 건물의 벽돌 값을 새로 매기는 작업이라면, 비재무적 가치화는 그 건물 안에서 일어날 창조적 혁신의 잠재력을 화폐화하는 작업이다.
 
브랜드 가치의 대전환과 '작은 선율'의 실체
 
브랜드 가치는 이 무형의 보물 중 가장 대중적이고 강력한 지표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Interbrand)의 분석에 따르면 '작은 선율' 하나가 어떻게 수조원의 가치를 창출하고 소멸시키는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코카콜라와 애플의 엇갈린 '선율'을 떠올려보자. 한동안 세계 브랜드 가치 부동의 1위(2000년 약 725억달러)는 코카콜라였다. 당시 코카콜라의 가치 또한 제조 설비보다 그 '빨간 로고'와 '상쾌한 경험'이라는 무형자산에 집중돼 있었다. 코카콜라도 '선율'에 의지한 기업이었다는 얘기다. 2013년 애플이 코카콜라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선 사건은 경영사의 상징적 장면이다. 코카콜라는 인터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 가치 순위를 처음 발표한 2000년 1위를 차지한 뒤 2012년까지 13년을 1위에 있었다. 이후 애플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2023년 기준 애플의 브랜드 가치는 5026억달러다. 같은 해 애플의 회계 장부상 총자산에서 모든 부채를 뺀 순자산가치(장부상 자본) 621억달러의 8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나아가 시장이 평가한 애플의 전체 시가총액(약 3조달러)은 장부상 자본의 약 50배에 육박한다. 이 거대한 격차는, 전적이진 않지만 브랜드 파워를 포함해 생태계 락인(Lock-in) 등 장부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자산에서 비롯했다.
 
아마존에서 '작은 선율'의 증폭을 볼 수 있다. 아마존은 2012년 약 186억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가졌으나, 10년 뒤인 2022년에는 약 2748억달러로 14배 이상으로 폭발했다. 물류 창고의 증설 때문이 아니다. 고객의 구매 패턴을 읽는 데이터 거버넌스와 '지구상에서 가장 고객 중심적인 기업'이라는 신뢰의 가치가 화폐화한 결과다.
 
테슬라도 마찬가지다. 테슬라는 유형자산인 자동차 생산 대수 면에서는 기존 완성차업체에 뒤처지지만, 시가총액은 그들을 압도한다. 테슬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한때 50배를 상회하기도 했는데, 장부상의 자산가치보다 시장에서 50배나 높게 평가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은 테슬라가 가진 '에너지 생태계'와 '자율주행 데이터'라는 무형의 자산이 미래의 지배적인 선율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유형자산인 자동차 생산 대수 면에서는 기존 완성차 업체에 뒤처지지만, 시가총액은 그들을 압도한다. 테슬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한때 50배를 상회하기도 했다. (사진=뉴시스)
 
비재무적 성과의 화폐화(Impact Valuation)
 
실제 그가 한 말이 아니지만 피터 드러커에게 귀속되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What gets measured gets managed)"는 격언은 드러커가 모든 것의 수치화를 경계했음에도, 이 문장은 현대 성과관리의 대원칙으로 통용된다. 스완이 선율의 감동을 자신의 인생에 통합했듯, 현대 경영자는 비재무적 성과를 재무적 언어로 번역해 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비재무적 자산을 가치화하는 방법론은 국제 가치평가 기준(IVS)과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임팩트 가중 회계 프로젝트(Impact-Weighted Accounts Project, IWAP)' 등의 연구에 힘입어 진화하고 있다. '사회적 투자 수익률(SROI, Social Return on Investment)'은 Social Value International이 정립한 가이드라인에 근거한다. 기업의 사회공헌이나 친환경 활동에 투입된 1원당 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창출됐는지를 화폐 단위로 환산한다. 이 같은 측정은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수단이 된다. '좋은 일'을 했다는 주관적 만족을 넘어, 이해관계자들에게 창출된 순편익을 화폐 단위로 입증하려는 시도다.
 
'브랜드 자산 평가(Brand Valuation)'는 ISO 10668(브랜드 가치 평가의 원칙) 및 인터브랜드의 방법론에 근거한다. 고객의 충성도와 지각된 품질을 미래 현금흐름으로 전환해 계산한다. 프루스트의 화자가 마들렌을 통해 과거를 복원하듯, 브랜드는 과거의 신뢰를 미래의 수익으로 복원해 내는 기제다. ISO 10668은 브랜드가 창출하는 이익 기여도를 정교하게 산출해 '무형의 감동'을 자산화한다.
 
ISO 30414(내외부 인적자본 보고 가이드라인)에 근거한 '인적자본 가치평가(Human Capital Analytics)'는 직원의 몰입도와 숙련도가 기업의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화한다. 연주하는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벵퇴유 곡의 선율 가치가 달라지듯, 기업의 핵심 인재는 그 자체로 움직이는 자산이다. 데이브 울리치의 인적자본 연구는 인력 비용을 '투자자산'으로 인식하게 하는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울리치는 인적자본을 조직의 전략 실행 능력을 결정하는 핵심 자산으로 규정하며, 이것을 계량화하려는 '인적자본 지수(Human Capital Index)' 연구를 통해 HR 관행과 기업 성과 간의 연계를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벵퇴유의 7중주: 무형의 자산과 부채의 총체성
 
스완은 처음에는 소나타의 '작은 선율'에만 매료되었지만, 나중에는 벵퇴유의 더 복잡한 '7중주'를 이해하게 된다. 경영 또한 마찬가지다. 단편적인 재무 지표(소나타의 한 마디)에서 벗어나, 재무와 비재무적 가치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총체적 이해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유의할 점은 이해를 시장과 사회의 언어로 통합해 표현한 이른바 '통합 보고'라는 것이 비재무 보고까지 재무 보고와 함께 수행하려는 회계법인의 입장을 대변하며 하나의 방법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해의 핵심은 '무형의 자산'에 대한 이해이다. 또한 진정한 경영의 7중주는 화려한 '무형의 자산'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소나타보다 더 복잡하고 웅장한 7중주가 불협화음을 포함하듯, 경영자는 장부 밖의 '무형의 부채'에도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요즘 기업을 분석할 때 '사회적 부채'라고 하면서 이 '무형의 부채'를 점검하고 그 위험을 중시하는 추세다.
 
브랜드가 쌓아 올린 명성만큼이나 은밀하게 쌓이는 평판 리스크, 환경을 파괴하며 얻은 단기 수익이 초래할 미래의 징벌적 비용, 그리고 구성원의 신뢰가 깎여나가며 발생하는 기업 조직 내부에서 유래한 장부 밖의 부채는 '무형의 보물'을 잠식하는 검은 그림자다. 글로벌 공시 표준화의 본질 역시, 기업이 감추고 싶은 무형의 부채를 어떻게 정직하게 드러낼 것인가에 있다. '작은 선율'에 주목해 '무형의 보물'을 발견했다면 동시에 잊고 있는 '무형의 부채'는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만일 '무형의 보물'은 없고 '무형의 부채'만 있다면 어쩌면 모르는 게 약일까. 그것이 한 방법이겠지만, 경영학적 처방은 아니다.
 
[안치용의 Critique: 숫자의 독재와 예술적 직관]
 
경영자는 '무형의 보물'을 인식하고 발굴해야 하지만, 비재무적 가치를 화폐화하는 과정에서 '숫자의 독재'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모든 가치를 억지로 숫자로 바꿀 때, 그 가치의 본질이 훼손되기도 한다. 직원의 열정을 단순히 '인건비 대비 매출'로만 파악하는 순간, 그 열정은 증발한다. 화폐화는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기 위한 경영 언어의 도구이지, 그 자체로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진정한 리더는 재무제표라는 악보 너머에 흐르는 벵퇴유의 '작은 선율'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숫자는 진실의 일부만을 말할 뿐이다. 훌륭한 경영자는 숫자가 말하지 않는 행간에서 기업의 미래와, 그 이면에 숨겨진 '무형의 부채'까지 읽어내는 직관을 가져야 한다. 감동을 숫자로 번역할 수는 있어도, 숫자 자체가 결코 감동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기업 장부에, 혹은 인생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당신만의 '작은 선율'은 무엇인가?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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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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