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이란 신정 체제의 정점에서 지난 37년간 '철권통치' 해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습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에서 주역으로 활동한 그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건데요. '반미'와 '반이스라엘'로 저항의 축을 형성한 그의 인생은 현재 이란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1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망 소식을 접한 정부 지지자들이 하메네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슬람혁명에서 '권력의 정점'까지
2일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이스라엘 합동으로 진행된 대이란 공격에서 이란 최고지도자인 하마네이 등 지도부가 폭격에 의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살해됐습니다. 이란에 대한 작전 '장대한 분노'가 시작된 지 15시간여 만에 하메네이의 사망이 확인된 겁니다. 이번 폭격으로 하메네이의 딸과 사위 등 가족 4명도 함께 사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란 당국도 국영방송을 통해 하메네이의 사망을 공식 확인하고 40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언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제거' 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지난 37년간 이어져온 하메네이의 이란 철권통치도 막을 내리게 됐는데요. 이란 신정 체제의 정점이자, 현대 이란의 권력 구조 핵심인 하메네이의 공백으로 중동 자체가 불확실성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시아파 이슬람 성직자 가문의 후손인 하메네이는 일찍이 종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신학 교육을 거쳐 종교 지도자로, 팔레비 왕정 시절에는 반정부 성향 인사로 활동하며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하메네이는 혁명의 상징적 지도자였던 루홀라 호메이니에게 신학을 배우며 정치활동을 했고,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릴 당시 혁명 세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이때 그는 서구에 반대하는 마르크스주의와 이슬람주의를 결합하려는 이념적 시도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를 폐지하고 이슬람공화국을 세운 뒤로는 호메이니가 초대 최고지도자에 올랐고, 하메네이는 국방 차관으로 본격적인 권력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후 그는 1981년 모하마드 알리 라자이 대통령이 암살된 뒤 열린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암살 시도에도 살아남아 97%의 득표로 이란의 첫 성직자 출신 대통령이 됩니다. 이때 하메네이는 취임 연설에서 "일탈과 자유주의, 그리고 미국의 영향을 받은 좌파"를 제거하겠다고 했습니다.
1989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한 하메네이는 호메이니가 노환으로 숨지자 2대 최고지도자에 올랐습니다. 신정 체제인 이란은 최고지도자를 종신직으로 하는데, 국가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일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신의 대리인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최후 앞당긴 '강경 진압'
하지만 하메네이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으로 여성과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는 등 억압 정책을 펼쳤습니다. 신정 체제의 최고지도자로 정책의 최종 결정은 물론, 선거 승인과 사법부 수장 및 국영 매체 경영진, 대통령·내각 임면권, 사면권 등 광범위한 권한을 쥐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반대파를 숙청하고 충성파를 육성하며 권력 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졌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밀착했습니다. 대신 대외적으로는 2015년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서방과 타결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이행을 반대하지 않는 등 실용적 접근법을 취했는데요.
그럼에도 1999년 개혁파 신문 살람이 폐간 항의 학생 시위,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 반발하는 시위와 2022년 히잡 여성의 의문사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했습니다.
여기에 서방의 누적된 경제제재로 경제난에 허덕이면서 발생한 테헤란 상인들의 반정부 시위는 그의 마지막을 앞당겼습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하메네이는 무차별적 유혈 진압에 나섰고, 이로 인해 3만명이 넘는 국민이 숨졌습니다.
결국 이때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 이란에 핵협상을 종용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에 따른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란 신정 체제의 37년 철권통치 최고지도자가 사망했지만 '이란의 봄'은 아직 가시권에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강경파의 '재집권'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